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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역사적인 를 되돌아본다
  
 작성자 : 범민련남측본부
작성일 : 2014-06-07     조회 : 752  

역사적인 <4월 남북연석회의>를 되돌아본다



작년에 이어 올 봄도 여지없이 전쟁의 위기가 오락가락하고 있는데요, 한편에서는 전쟁연습에 대북제재니 소란을 피우면서 한쪽에서는 드레스덴 3대 제안이니 통일준비위원회니 하는데 그 어디를 눈 씻고 봐도 남북공동선언은 한마디도 없으니 무슨 통일을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그 속이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헌법재판소에 진보정당해산을 청구하는 미증유의 폭정으로 일관하고 있고, 많은 진보적 통일인사들과 인터넷 언론들의 활동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연일 수구언론과 청와대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원인은 북핵이라고 떠들어 대잖아요. 국가보안법 강화하고 진보세력의 입과 발에 족쇄를 채우고 북을 무장해제시키는 방향의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인데 이건 미국에서도 안팎의 심한 비난에 부딪혀 이미 무용지물이 된 정책입니다. 미국은 이미 북의 체제가 안정궤도에 들어섰다고 인정하면서도 급변사태를 조장하는 앞뒤가 안 맞는 잘못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핵보유 도미노를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의 측면과 함께 한미일군사동맹체제를 강화하여 북과 중국을 봉쇄해서 현재의 긴장사태를 관리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지랖 넘게 한일관계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보면 꽤나 다급해 졌습니다. 현재의 복잡하고 험악한 정세 자체가 미국의 강경책이 낳은 인과응보인데 미국은 스스로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여전히 윽박지르고 엄포만 놓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이미 이명박 시절 때 이래저래 다 써 본 지나간 레퍼토리를 가지고 좌충우돌하며 체제통일의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어느 누구가 통일의 길을 말할 때 남북공동선언을 빼놓고 말할 수 없고, <우리민족끼리>를 외면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 설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시대적으로 실천적으로 입증된 것 아닙니까.
조국통일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모아 외세에 의해 인위적으로 갈라진 남과 북을 하나로 잇고 우리 민족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는 범민족적 운동’인데, 달리 말하면, 민족적 총의와 역량을 힘있게 모아 나가면서 분단의 원인, 분단을 지속시켜 온 요인, 분단을 강요하고 있는 요인을 없애면 되는 것이죠.
6.15, 10.4공동선언이 부정되고 북미대결과 남북갈등이 끝 모를 데까지 치닫고, 통일운동이 종북이니 체제전복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로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있는 지금,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적 노력의 역사적 자취를 되돌아보는 것은 통일의 숭고함과 참의미를 되새기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대한 왜곡과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분단과 예속의 변주곡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상회의의 결정서는 12월 27일 발표되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부상한 사회주의, 민족해방운동의 확산을 막고 친미자본주의국가로 편입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써 조선을 직접신탁통치(5년 + 5년 연장 가능)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소련은 강대국에 의한 대리통치를 반대하고 조선 스스로의 임시정부수립을 주장했다. 소련은 ‘신탁’이라는 말 대신 ‘후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그 기간도 5년 이내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소련측의 안이 대부분 수용되었다.


이것은 미국에게는 충격이었으며, 친미친일세력에게는 절망이었다.
중도파로 불리던 김규식과 안재홍 선생도 “선 임정 수립, 후 탁치 반대”의 내용으로 3상회의 결과를 일부 지지하고 나섰고, 심지어 우파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민당 초대 당수였던 송진우는 3상회의를 지지한다고 내몰려 암살당하기도 했다(45년 12월 30일). 여운형 선생은 3상회의 결정을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적 합의로 인식하면서 자주적인 노력으로 신탁통치 가능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군정과 이승만의 한민당은 동아일보를 내세워 1945년 12월 27일 1면 머리기사로 ‘3외상회의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을 했다고 완전히 뒤집힌 거짓보도를 하였고, 이어 임시정부수립의 내용은 생략한 채 ‘신탁통치결정’이라고 조작하여 왜곡보도한다. 결국 미군정과 이승만의 의도대로 신탁통치반대 = 반소 = 반공애국투쟁으로 돌변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한 임시정부수립의 절호의 기회는 거대한 좌우대립의 광풍 정국으로 빠져 들고 말았다.


미국과 친미친일세력들은 자주독립이냐 영구분단예속이냐의 본질을 왜곡 은폐하고 ‘친탁은 공산주의이며 소련의 분할점령을 지지하는 민족반역자’라고 몰아 붙여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 좌우대립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미소공동위는 46년 1월에 개최되었으나 46년 5월부터는 무기한 개점휴업으로 빠져 들었다.


급기야 한 달여 뒤인 6월 3일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전격적으로 공개 언급하였다.
김구 선생은 1947년 11월 24일, ‘남측만의 단독선거는 국토 양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48년 2월 16일 김규식 선생과의 공동명의로 단독선거 강행을 저지하고 통일국가수립을 위해 남북지도자회의를 소집할 것을 김일성 위원장과 김두봉 위원장에게 공식 제의하였다.


이에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3월 25일 평양방송을 통해 5·10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남북조선의 모든 민주주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들이 4월에 연석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민주당을 제외한 남한의 모든 정당·사회단체는 즉각적인 지지와 적극적인 참여를 천명함으로써 4월 19일 평양에서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열리게 된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다


미국은 미소공동위를 부정하고 47년 9월 17일 조선문제를 UN에 이관할 것을 주장하였고, 유엔 조선임시위원단(47.11.14 유엔부속기구로 결성)을 결성함으로써 사실상 분단정부수립과 이남 단독지배 구상을 현실화하는 수순 밟기에 들어간다.


위원단은 48년 1월 조선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북과 소련이 조선임시위원단이 조선인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북지역 입경을 거부하자, 위원단은 결국 3월 12일에 ‘가능한 지역의 총선거’라는 불법적인 결정을 내리고 미군정이 5월 남한단독총선거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민중들과 지도자들 사이에는 분단되면 전쟁 난다는 인식이 널리 공감되어 있었다. 때문에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단독정부는 절대 안 되며, 수천 년 동안 단일민족국가로 살아 온 조선민중은 ‘분단은 내 몸뚱아리가 잘려 나가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었을 만큼 단일성이 강해서 분단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은 배급제와 토지개혁 등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미군정 철폐와 미소공동위 재개와 조선독립을 요구한 민중정치파업이었다.


이남에서는 좌우합작을 위한 끈질긴 협상들이 이어 졌다.(여운형 선생은 47년 7월 19일 암살당하고 말았다.)
김규식 선생이 대표로 추대된 민족자주연맹(47년 12월 20일 결성, 15개의 정당과 25개 사회단체 및 인사로 구성)은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남북통일정부의 즉각수립을 촉진하기 위한 남북정치단체대표자협의회를 제의하였다.
1947년 11월 초에는 한독당, 근로인민당, 인민공화당 등 13정당협의회를 개최하여 미소양군 동시철수와 남북제정당대표자회 소집, 남북총선거준비기구의 결성 등에 뜻을 모았다.


이러한 민중의 요구가 드높아지는 상황에서 2.7구국투쟁이 일어났고, 2월 10일에는 김구 선생은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단독정부수립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김구 선생도 49년 6월 26일 암살당함)
3월 12일에 김구, 김규식, 김창숙, 조소앙, 조성환, 조완구, 홍명희 등은 ‘통일 독립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7거두성명’을 발표했다.


4월3일에는 진보단체를 포함하여 100여개의 중간, 우익 정당·사회단체 대표 200여명이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를 구성하고 ‘민족통일을 급속히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전 민족적으로 지지하자’라는 특별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규식 선생과 김구 선생은 남북정치지도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마침내 남북협상이 실행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미군정의 폭정과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맞서 4.3항쟁을 통해 통일정부수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는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 반대, 경찰타도’, ‘남북통일을 위해 민중의 군대로 행동할 것’을 호소하는 여순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단선단정을 저지하고 외세를 철수시키며 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족대단결을 강화하는 민중의 투쟁과 민족정치회의를 통해 전민족적 역량을 모으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민족자주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최고의 애국애족


4월 19일부터 4월 23일까지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56개 정당단체(남쪽의 41개 정당단체의 396명과 북의 15개 정당단체)의 남북대표자 695명은 조선문제를 유엔에 이관하여 민족문제를 국제화하여 외세의 개입을 끌어 들이는 것에 대한 부당성과 위험성, 그리고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을 애국적 구국투쟁으로 인정하고 외국군철수 후 통일민주국가의 수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친 회의에서는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대응책과 남한 단독선거 단독정부수립반대 투쟁대책”이 논의되었으며 〈조선정치정세에 관한 결정서(홍명희 민주독립당 위원장 낭독)〉,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위원회 조직 결의〉, 〈미·소 양군 철퇴요청서〉, 〈전조선 동포에 격함(이극로 조선건민회 위원장 낭독) 〉등의 문건이 채택되었다. 연석회의 마지막 날에는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 전국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미소 양국정부에 보내는 요청서’에서는 남한 단독선거를 절대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며 양군을 동시에 철거하고 조선 인민이 자기 뜻대로 선거를 통해 통일적인 민주주의 국가수립이 되도록 요청한다는 내용을 채택하였다.


이어 남북연석회의의 성과를 공고히하기 위하여 4월 30일에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를 개최하여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통일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당면 문제들을 담은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협의회에서는 5·10단독선거를 파탄시키고 외국군대가 철수한 후에 전국적인 민주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특히, 외국군대가 철수한 후에 내전과 같은 혼란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남한 단독선거의 결과를 결코 승인하지 않고 이러한 선거로 수립된 단독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남북연석회의의 교훈


첫째, 당시 정세는 단선단정 기도를 분쇄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석회의는 사상과 정견과 신앙의 차이가 있더라도 민족통일국가수립에는 그 누구든지 단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4월 21일 남북연석회의에서 한 김구 선생은 축사에서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는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전 민족의 유일 최대의 과업은 통일독립의 전취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하(目下)에 있어서 통일독립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소위 단선단정입니다. 그러므로 현하에 있어서 우리의 공동한 투쟁목표는 단선단정을 분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현하에 있어서만 조국을 분열하고 민족을 멸망하게 하는 단선단정을 반대할 뿐 아니라,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것을 철저히 방지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선단정 분쇄를 최대의 임무로 삼고 모인 이 회합은 반드시 전민족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하여야 할 것이니, 이 회의는 반드시 성공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역설하였다.


둘째, 연석회의는 전 민족의 역량을 통일운동으로 모아 내었다.
일제하 독립운동과 좌우합작운동과 통일운동이 유기적으로 하나의 목표, 즉 외국군의 철군과 민족자주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데 모든 사회운동의 대동단결을 이루어 내었다.


셋째, 남북연석회의는 반외세자주통일의 원칙을 역사적으로 대중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의의 높은 민족회합이었다.
45년 9월 8일 인천을 통해 들어 온 미국은 즉시로 미군정을 수립하고 조선내의 유일한 정부라고 선언하였다. 이로부터 미국은 민족분열과 친미정부수립을 위한 의도를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해방 후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미군정의 폭정에 짓밟히던 대다수 민중들은 외국군 철거와 남북회담을 지지하였다. 정당 사회운동에서 제기되던 반외세자주노선이 전민족적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은 남북연석회의의 성과이다. 이는 조국통일운동에서 자주의 원칙이 역사성과 생활력을 갖고 있음을 말해 준다.


넷째, 이리하여 남북연석회의는 이후 민족대단결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의 사상적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으며, 민족의 주체역량이 통일문제해결의 담당자인 만큼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헌신과 노력이 요구되는지를 후대 역사에 과제로 남겨 주고 있다.



맺으며


해방에서 남북연석회의까지 각계민중의 투쟁이 보여 준 가장 소중한 메시지는 ‘조선의 통일은 조선사람의 손으로’이다. 잔혹했던 일제 식민폭압통치하에서도 민족분열과 국토양단은 있지 않았다. 미국의 상륙으로 시작된 민족분단의 역사는 5천년 역사를 일구어 온 단일민족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기독교와 무신론,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을 초월하여 민족의 분열과 국토의 양단을 막기 위한 민족대단합의 역사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민족문제해결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최우선의 문제임을 웅변해 준다.


4월 남북연석회의의 정신과 원칙은 6.15, 104공동선언에 고스란히 계승 발전되고 있다.
조국통일의 주인은 우리민족 자신이며, 외세의 개입과 간섭없이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통일의 원칙이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힘차게 계승되고 있다.


민족의 분열을 해결하지 못하면 평화도 번영도 그 어떤 민족의 이익도 지켜 낼 수 없으며, 영원히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노리개로 될 수 밖에 없음을 오늘의 정세는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길에 민족의 대단결보다 더 본질적이고 절박한 과제는 있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범민련 남측본부 신창균 명예의장의 호소로 글을 맺는다.
“남북연석회의는 통일을 지향하는 남과 북의 모든 애국세력이 제도와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얼마든지 단결할 수 있음을 입증한 역사적인 회합이었다. … 조국통일을 위해 좌와 우 가릴 것 없이 미국과 이승만정권을 제외한 온 민족이 단결했듯이, 지금도 하늘을 떠받들든 맑스를 신봉하든 이념과 정파, 종교를 뛰어넘어 민족은 하나라는 근본으로 돌아가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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