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범민족연합 범민련 남측본부

함께읽는글

 
  [칼럼] [들술날숨] 내 인생은 나의것! 주인답게 살고 싶어요
  
 작성자 : 범민련남측본부
작성일 : 2014-11-14     조회 : 578  
 첨부파일 :  내_인생은_나의것!_주인답게_살고_싶어요.hwp (20.5K) [13] DATE : 2014-11-14 13:47:55

내 인생은 나의것! 주인답게 살고 싶어요


인생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참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인생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사는 방법도 천차만별입니다. 인생관이란 한마디로 인생에 대한 관점과 태도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인거죠.


초월주의적 철학적 관점에서는 ‘인생은 참 나를 찾는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둡니다. 세상이 온통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론적인 대립에 빠져 있어 그 속에서는 갈등과 혼돈이 있어 사람의 행복과 고요함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현상세계를 넘어 하나의 근원인 절대세계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이걸 보통 ‘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중심의 가치관을 갖는 사람은 일체의 예속과 억압을 반대하고 사람이 세상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런 인생의 가치와는 사뭇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인생관도 있습니다.


강자생존, 경쟁지상주의의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본, 권력, 학벌, 인맥 등등의 요소를 우선시합니다. 자본주의에 기초한 모든 가치관은 사람들에게 패배하지 않기 위해,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남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경쟁하라, 싸워라, 이겨라’라고 종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기형적인 괴물로 증식합니다. 학교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가르쳐도 사회구조가 ‘행복은 재산 순이고 권력의 크기다.’라고 고정화된 힘의 질서를 강요하면 여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인생관의 문제이지만 이게 나라를 단위로 말하자면 국가이념, 국정철학 이런 게 되지 않습니까? 청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신대륙에 나라를 건설했다는 미국은 자신들의 종교적 자유 수호를 위해 수백만의 인디언을 학살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천만의 흑인을 짐승이하로 취급하였으며, 다른 나라에 기독교 근본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일본이 1931년에 만주국을 조작할 때 내세운 건국이념은 민족협화(協和)였습니다. 이건 뭐 이념이라 할 만한 가치도 없는 그저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조잡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 거죠.
우리나라처럼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재세이화(세상에 나아가 이치대로 다스린다), 광명이세(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 등을 건국이념으로 삼는 나라는 없죠.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의 주제는 『내 인생은 나의 것! 주인답게 살고 싶어요』입니다. 잔소리많은 부모에게 10, 20대 청소년이 하는 말인 것 같습니까?


형규는 십 수 년 동안 몸담았던 노동조합 생활에 지쳤습니다. 회의와 투쟁, 그리고 해고와 복직이 거듭되는 동안에 애들도 초등학교 들어가고 뒷바라지에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노조간부 중에서는 30대중반이라 투쟁선봉대도 하였고 용역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스스로 불효자라는 자책감에 자주 괴로워하면서 노조활동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안 나가던 동창회모임도 나가고, 등산도 자주 나가다보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이제는 월차를 묶어서 장기산행을 다닐 정도로 산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조합 형님이 한번 보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너 요새 얼굴이 잘 안 보인다?” 형규는 뾰족하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얘기해봐야 얘기가 길어질 것 같고 해서 따라 주는 술만 받아먹다가 그만 취기가 올라 형님한테 속마음을 열고 말았습니다. “형님, 조합 활동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양심껏 살겠습니다. 누구나 한번 가는 인생인데 제 인생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가 노동자 의리를 잊고 살겠습니까.” 자, 이 대목에서 술잔이 날라 갔겠습니까, 뭐가 날라 갔겠습니까? 노련한 형님 왈 “ 형규야, 이제 너도 지칠 때가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고민이 많이 되겠지, 그래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다.” 그 뒤로도 형님은 형규와 자주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노동자 의리를 화두로 시작하게 된 수차례의 대화는 형규에게 노조 족구부 20대 회원들을 책임지는 역할로 조정되어 형규는 다시 노조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영실이는 지역의 동네 청년회 창립회원입니다. 회사 다니면서 집안 살림하고 애 키우면서 청년회 활동한다는 게 말이 쉽죠.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다 하더라도 동네사거리 촛불선전전이나 청년회 모임에 꼬박 나가는 게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시댁 식구 경조사에, 애들 학교 자모회는 물론이고, 회사 끝나고 와서 애들 미용실에 데려가면 저녁이 후딱 가버립니다. 애들 씻기고 저녁먹이고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동생 부부에게 애들 부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속 터지고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떤 날은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건지 갑자기 가슴에서 뭐가 확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우쿨렐레를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청년회에 안 나가는 것만 해도 가슴이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전망을 가지고 했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열심히 동네 주민들 만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했는데 몇 년을 지나도 그저 반복되는 일상뿐이었던 것입니다.
영실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선, 내가 숨을 쉬고 살아야 청년회도 있고, 활동도 있지 않겠나. 나는 내 삶에 너무 소홀 했어”


병국이는 선배들이 하라는 일은 그 무엇이든 충실하게 해 왔습니다. 대학 때부터 농민회까지 그저 선배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닐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선배들을 믿고 활동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선배들과 입장이 같다는 이유 때문에 지적도 받았습니다. “너는 머리가 없냐, 줏대가 없냐, 어찌 선배가 하자는 대로만 하냐?” 선배들이 송년회행사를 고집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동의했는데 행사가 사람도 안 오고 적자도 생겼습니다.
선배들의 권유대로 후배들 챙기느라고 많은 정성을 들였는데 후배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아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배들이 하라고 해서 했는데 어쨌든 결과가 안 좋았습니다. 병국이는 농사를 정리하고 도시에 나가 월급이 적어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단체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고 농민회에 지긋하신 농사 대선배께서 막걸리 한잔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 꽤나 많이 먹었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 땅과 더불어 산다는 것, 노동을 한다는 것, 정부는 농민농업말살정책을 강행하는데 우리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천심을 믿고 민심을 일군다는 것 등등... 너무나 많은 말씀을 들어서 그런 건지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머릿속에서 배수펌프 모터소리가 계속 울려 댑니다. 병국이는 그래도 자기가 먹은 마음을 쉽게 포기하기가 싫었습니다. ‘내가 할 일이 농민운동 밖에 없나’

명식이는 요새 토론 기피증이 생겼습니다. 자기 생각은 분명히 있는데 토론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바에 자기 의견이 따라 가게 되고, 결정대로 안하면 여러 비판을 받게 되고 더 이상 변명을 하기도 구차하게 느껴졌습니다.
말 잘하는 동료와 토론을 하면 분명히 아닌데도 뭐라고 반박을 하기가 어렵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 그걸 조정하고 결론을 내는데 너무도 힘든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이 얘기를 들으면 이게 맞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게 맞고 해서 도무지 뭐가 옳은 건지도 분간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쉽게 자기 의견을 말하기도 수월치 않습니다. 명식이는 혼자 수개월 동안 끙끙 속앓이를 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내 마음이 가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명식이가 첫 실행에 옮긴 것은 운영하던 분식가게에 충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가게가 그럭저럭 수입이 생기자 명식이는 가게를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저녁에 얼굴 보러 오는 동료들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게 되고 이제 명식이는 뭘 책임져야 하는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편안함이 생기게 되었고 이전 보다는 생활이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의 주인이 진정 나인가’ 라는 고민과 사색에 접하게 될 때는 과거에 대한 기억 속에서 어떤 부딪침이나 좌절 또는 후회나 반성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전망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하면서 인생의 과정을 되짚어 보는 거죠. 그런데 보통 사람의 경우 과거를 떠올리는 것 보다는 미래를 떠 올리는 게 더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습관의 연속에 의해 미래가 자동적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만약 미래를 습관적으로 맞이한다면 그건 되는대로 사는 것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주인답게 살지 못했다’는 과거가 극복되려면 주인답게 살려는 의지와 능력을 키워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물어 볼까요?
위의 네 가지 일화를 보면 주인답게 살려는 의지와 능력의 양성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대목이 툭 튀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어떤 구속도 제약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나 영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 과연 가능합니까. 때문에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자유주의를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죠.


『민족의 진로』독자들께서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시나요? 이와 달리 주인답게 산다는 것은 제약, 예속, 간섭, 타성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식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자기 운명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운명이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처지와 환경, 상황, 조건을 말하는데, 자유롭게 산다고 해서 자기의 상황이나 조건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니겠죠. 이건 관념론이고 환상이죠.


6.15 통일시대를 염원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자기 인생과 민족의 운명을 일치시켜 나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민족이 걸어 온 풍파와 영욕, 여기에 면면히 배어 있는 수많은 애국자들의 희생과 영예, 결심과 헌신에 무관하게 자기의 소질과 취향대로 삶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차별과 억압, 분단과 독재, 비리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상식, 양심, 정의 등등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적잖은 힘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천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통일시대의 일꾼들이 인생문제를 사색 할 때 동지애, 조직, 약속, 양심 등 이런 가치와 개념들이 소중하게 다뤄지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사색을 할 때는 자신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개선하고 진보하는 방향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날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주인답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삶이고, 모든 것과의 관계를 잘 푸는 것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때 내 인생은 단지 내 것이 아니라 민족과 민중, 시대와 역사, 동지와 투쟁의 관계 속에서 삶이라는 점을 항상 유념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내용은 좀 숨차고 딱딱 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TOTAL 12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1946년의 교훈
1946년의 교훈 조선민족은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원하였고, 미군정과 친일파는 분단을 강행하였다①. 1946년은 분단과 전쟁을 막고 자주통일국가의 조속한 수립을 위…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11-14  |  Hit: 599
[칼럼] [들술날숨] 내 인생은 나의것! 주인답게 살고 싶어요
내 인생은 나의것! 주인답게 살고 싶어요 인생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참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인생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11-14  |  Hit: 579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아! 38선
아! 38선 해방정국의 민심 194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국이 8,453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당시 민중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한다는 여…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9-18  |  Hit: 677
[칼럼] [들숨날숨]어떻게 굽든 맛있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굽든 맛있기만 하면 된다? 회식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을 손꼽으라 하면 아마도 삼겹살이 으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시사철 계절에 관계없이, 장소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가리…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9-18  |  Hit: 625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매국과 굴욕으로 얼룩진 『한일국교정상화』
한미일 전쟁삼각동맹의 서곡 – 매국과 굴욕으로 얼룩진 『한일국교정상화』-  1965년 6월 22일!박정희정권은 경술년의 국권강탈 강제합방보다 더 치욕스럽고, 36년간의 식민노예보…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7-17  |  Hit: 765
[칼럼] [들술날숨] 사람은 흔히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다
  『사람은 흔히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시골에서 농사짓는 영희네 아버지는 딸이 5명 있습니다.큰 딸은 영순이, 둘째 딸은 일순이, 셋째…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7-17  |  Hit: 719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역사적인 <4월 남북연석회의>를 되돌아본다
역사적인 <4월 남북연석회의>를 되돌아본다 작년에 이어 올 봄도 여지없이 전쟁의 위기가 오락가락하고 있는데요, 한편에서는 전쟁연습에 대북제재니 소란을 피우면서 한쪽에서는 …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6-07  |  Hit: 752
[칼럼] [들숨날숨] 말걸기
말걸기 누군가에게 말걸기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때 하게 됩니다.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뭐가 필요한지 그 사연과 욕구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거구요.자녀에게 말걸기…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5-29  |  Hit: 819
[기고] 민족자주통일비 건립 12주년을 맞으며
민족자주통일비 건립 12주년을 맞으며   금년으로 이곳 중부대학교 만인산 태봉 자락에 민족자주통일비를 건립한 지 12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참으로 …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4-04-30  |  Hit: 720
[기고] 범민련 탄압은 7.4, 6.15 합의를 부정하는 반통일 범죄행패
    [기고] 범민련 탄압은 7.4, 6.15 합의를 부정하는 반통일 범죄행패 - 민주세력 총단결로 반인권 반통일 공안몰이 짓부수자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명예회장 &n…
Name: 범민련남측본부  |  Date: 2013-08-02  |  Hit: 2944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