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범민족연합 범민련 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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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민련자료] [소고] 결성 15돌, 범민련운동의 정치적 성과...
  
 작성자 : 범민련남측본부
작성일 : 2006-08-11     조회 : 3,788  

[소고] 결성 15돌, 범민련운동의 정치적 성과와 6.15시대 범민련의 과제
  민족의 진로 2005년 12월호 통권 68호

2005년 11월 29일   민족의 진로   

 최동진 남측본부 교육홍보위원장

▲90년1차범민족대회-연세대 

범민련의 정치적 성과를 6.15시대에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
범민련이 15돌을 맞이하였다. 1990년 11월 20일 출범한 이래 많은 사건과 흔적, 성과를 남기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러나 세월은 어느새 왔지만 범민련 15 성상에 공 들이고 갖가지 실천으로 얽힌 사연과 무용담이 많은 노 선배들과 일꾼들에게는 장기수 선생님들만큼은 아닐지라도 고단한 분단의 역사를 뼈아프게 체험한 연대기였을 것이다. 김주석 서거와 고난의 행군시기도 같이 겪은 북은 더더욱 결코 짧지 않고 잊지 못할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 길고 넓은 범민련 역사를 특히 범민련 남측본부의 경험과 안목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 또, 범민련의 역사는 민족, 민중의 역사다. 범민련 15년을 돌아보자고 한다면 그만큼 소상하게 봐야하고 더 큰 여지가 있겠다. 우리는 그 소상함을 앞으로 있을 공식적인 평가와 수많은 분들의 범민련 회상기에서 충족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주된 관심은 범민련의 집약된 정치적 성과를 어떻게 요약하고 6.15시대 어떻게 발현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시작이 반이랄까 범민련운동의 정치적 성과는 범민련 출범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80년대 말 시기에 불거진 민족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대응과 민족의 호응,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고양된 민중의 기세가 합세해 1차 범민족대회가 성사되었으며 선행 통일운동 성과(눈에 띄게는 조국통일 3대 원칙과 연방제방안)를 계승하는 높이에서 범민련이 출범하였다.
 

범민련 출범을 위한 정치적 준비

 범민련을 출범하기 앞서 남측의 애국적인 민족, 민중 대표자들은 우선 해방 이래 자주통일독립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족, 민중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계승해 낼 것을 온 세상에 공표하였다. ‘88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 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외세에 대한 예속과 굴종의 강요, 역대 군사정권에 의한 강권통치에 맞서 우리 민중은 4.3항쟁,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87년 6~8월 민중항쟁을 통하여 피 흘려 싸워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민중의 투쟁전통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이 뜻이 남, 북, 해외에서 공히 힘차게 지지되었으며 그 실천의지로써 ‘90년 제1차 범민족대회를 성대히 개최하게 되었다. 이어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 조국통일 3대원칙』임을 재차 확인하였으며 핵무기와 휴전협정이 폐기되어야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선언하였다. 당연하게도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한>반도에 있는 외국군대가 철거되어야 하며 군축이 이루어져야 함도 요구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모든 반통일적 제도는 즉각 철폐』되어야 하고 『단번에 하든 점차적으로 하든 연방제 방식의 통일국가 건설이 현실적인 평화통일의 길이며 민족대단결의 길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90년대 조국을 통일할 『겨레의 철석같은 의지』를 밝히고 『조국통일의 주체는 남과 북 온 겨레』로서 그 실질적인 구현으로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또는 『범민족적인 통일운동체』결성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하여 제1차 범민족대회가 개최된 1990년 그 해에 지체 없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되었다.
 
범민련의 눈부신 정치투쟁과 성과
 범민련 결성과 범민련 운동 방향을 정립하다.
 민족대단결의 견지에서 자기의 통일운동방향과 의지를 가늠한 남,북,해외 온 겨레는 그것을 정식화하고 대중실천 단계로 본격화하고 책임질 범민련을 결성하였다.
1990년 11월 20일 결성된 범민련은 제1차 범민족대회 성사에 이어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반민족, 반통일을 획책해 온 미국과 노태우정권에게 심대한 정치적 타격으로 되었으며 그 반증으로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는 1991년 1월 23일 결성 직후 혹독한 탄압을 당하였다. 그만큼 3자연대조직 범민련 결성은 조국전선이래 <민족대단결운동>의 효시로 우뚝 세워졌다.
아무튼 범민련은 그 여세를 몰아 ‘91년 제2차 범민족대회 공동 결의문을 통해 <19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결의하고 투쟁을 더욱 고무하였다. 이는 ‘90년대 기어이 통일을 쟁취하자는 민족의 염원을 보다 구체화한 범민련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95년 통일원년>을 이루기 위한 범민련의 노력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범민련의 영향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합법, 비합법 영역을 불문하고 <‘95년 통일원년> 성사를 위한 집중현상이 만연하였다.
또한 범민련이 결성된 1991년부터는 범민련 결성 이전에 확인한 제반 정치적 과제들을 정식으로 범민련운동에서 해결해야 할 당면임무로 재확인하였다. 
1991년 제2차 범민족대회에서는 냉전해체에 비틀거리는 미국이 1월에 이라크를 상대로 걸프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에 전쟁의 불똥을 튀려는 긴박한 정세를 반영하여 남북 사이에는 불가침선언을, 북미 사이에는 평화협정체결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또, 미군철수를 당연시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적극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조국통일이 목전에 이르렀음을 점점 피부로 와 닿은 범민련은 특히 조국통일방도를 빨리 확정할 것을 예고하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먹고 먹히우지 않는 연방제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나아가 범민련은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민족대단결을 심각히 저해하는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결에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12월 13일에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12월 31일에 합의되었다.
범민련의 정치과제를 계속 대중의 것으로, 실천적으로 심화하다.
범민련은 ‘92년 제3차 범민족대회에서 우선 미군철수의 환경이 적극 마련되었음을 확인하고 미군철수투쟁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냉전이 해체된 마당에 이른바 소련의 세계적화 우려도 없어지고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남북 사이에 채택되어 소위 남침위협도 사라진 조건에서 미군의 이남강점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적반하장으로 소위 북핵문제를 또 들고 나왔다. 이에 범민련은 <한>미핵군사훈련을 지적하면서 전쟁연습 반대투쟁을 제기하고 <한>반도 완전비핵화지대로 만들 것을 결의하였다. 3차 범민족대회에서는 누차 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철폐를 분단원흉 외세와 반통일 장치를 제거하기 위한 타협할 수 없는 당면 임무로 재확인하고 총력투쟁을 결의해 냄으로써 범민련의 기본 정치과제로 정식화해 나갔다. 남은 문제는 통일방도를 확정짓는 것이었다. 『조국통일운동을 하나의 목표로 지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방도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통일방도를 시급히 정리하는 것이 절박하게 요구되었다. 하여 통일방도를 확정짓기 위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93년도 8.15에 즈음해 소집할 것이 제안되었으며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짐하였다. 통일방안은 ‘94년 5차 범민족대회에서 연방제로 정립되었다. ’95년 6차 범민족대회에서는『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강령을 ‘90년대 연방제통일을 위한 투쟁의 기본지침으로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며』라고 결의함으로써 연방제 통일방안을 재차 확정하였을 뿐 아니라 조국통일 3대 원칙, 연방제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범민련의 통일정책, 통일운동방향의 근본기조로 인지하였다.
범민련의 3자 연대 진용을 정상화하다.
한편, ‘92년 3차 범민족대회에서 청년학생들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을 힘있게 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범민련의 정치투쟁이 본격화될수록 범민련의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더욱 높일 것이 요청되었다. 그 결과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가 두말할 것 없이 <범민련 남측본부>로 되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거족적인 연대투쟁을 벌려 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는 1993년 1월, 본조직 결성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의 일환으로 <범민련 강령, 규약 남측시안>을 범민련 공동사무국에 전송하였다. 급기야 ‘93년 12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하여 남과 북, 해외의 범민련 조직들은 서울과 평양, 도꾜에서 범민련 강령과 규약을 동시에 발표하여 범민련 운동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 성과에 기초하여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는 ’95년 2월 25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를 결성, 범민련운동에 더욱 완연한 진용을 갖춰 복무하게 되었다.  
범민련의 3자 연대운동이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하다.
한편, ’97년 범민족회의 공동 결의문에서는『불굴의 기개로 남,북,(북,남)해외의 3자 연대를 실현하고 <조국통일의 3대 헌장>을 견고히 고수하였으며 범민련과 범청학련 조직을 지켜내고 조국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더욱 튼튼히 다진 데 대하여 긍지 높이 총괄』하였다. 또 『우리들은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위업 실현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확고히 고수하고 구현해 나갈 것이다.』고 하였다. ‘99년 범민족회의 공동결정서에서는 『범민련의 통일애국운동을 지난 시기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 나갈데 대하여 견해의 일치를 보고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1.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범민련의 기본 정치노선으로 재확인하고 그것을 철저히 관철해 나갈 것이다....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과 전민족대단결 강령, 연방제 통일방안은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 3대 헌장이다.』고 명시하였다.
이렇게 하여 ‘90년대 범민련운동 속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이 뿌리를 내리고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통일, 평화협정체결 4대 정치과제가 계속 투쟁의 줄기를 이루었다. 또, 애국대중들은 일부 사회주의 변질, 운동권 이탈, 분열, 탄압 등의 환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전진하는 범민련운동으로 투쟁의 방향과 기준을 재고 도모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개량주의와 기회주의로 맥빠진 사회기풍이 끝없이 의제를 제출하는 범민련운동 속에서 진보적인 긴장을 견지하고 역동적으로 되살아났다.
범민련운동은 탄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기의 사상의지를 더욱 굳세게 다졌으며 혼탁하면 혼탁할수록 앞길을 명확히 하는 민족지침을 과감히 참고하거나 수용하였다. 
범민련은 안팎의 극심한 시련을 신념과 의리로 극복하다.
1994년은 김주석과 문목사 두 분이 서거한 해이다. 1994년은 미국의 핵전쟁책동이 최고조로 달한 때이다. 1994년은 남측운동진영에서 분열주의가 기승을 부린 때이다. 1994년은 인간말종 김영삼이 애국민중을 본격적으로 탄압한 때이다. 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여전히 시달렸으며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면서 북측의 대외경제관계는 구상무역이 없어지고 경화결제방식이 요구되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설상가상으로 ‘93년 냉해, ’94년 우박, ‘95년 100년만의 큰물피해, ’96년 큰물피해, ‘97년 혹심한 가뭄 등 자연재해가 잇따랐으며 총체적으로 6.25전쟁을 능가하는 <고난의 행군기>였다.
‘94년 이래 범민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민족 최대의 시련기에 접어들면서도 통일운동을 계속 전진시켜 나가야 했다. 특히 남측에서 범민련을 이탈하거나 범민련의 3자 연대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전국연합 일부 간부들이 ’94년 3월 새로운 통일운동체 민족회의 결성을 발기하고 노골적으로 범민련 해체를 주장하였으며 ‘95년에는 아예 범민족대회를 거부하는 실력행사를 벌였다. 범민련운동에서의 이탈과 분열은 무려 4년을 경과하며 민족역량을 소진하였으며 조국통일을 지체시켰다. 물론 ’99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제8기 정기 대의원대회가 통일운동에서 3자연대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범민련 남측본부와 함께 통일운동에서 공동 행동을 벌여 나가기로』함으로써 분열은 다행히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통일운동진영이 사분오열되는 양상을 놓치지 않고 김영삼 역도는 ‘94년 5차 범민족대회기간 2400여 명을 체포하고 44명을 구속하였으며 ’95년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지도부 전원에 해당하는 29명을 연행, 구속하였다. ‘96년 7차 범민족대회에서는 5천여 명의 청년학생들을 체포, 구금, 구속하였다. ’97년 8차 범민족대회는 준계엄 상태로 된 서울을 벗어나 혁명도시 광주에서 치루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민련은 불굴의 기세로 반통일 세력들에게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가하였다. 그 힘은 바로 조국통일에 대한 일념과 남북해외 3자연대에 대한 숭고한 민족적 의리를 체현하면서, 짓밟히면 일어서고 구속되면 그 초소를 자원해 온 위대한 통일애국대중들이었다. 
범민련은 참으로 민족, 민중이 주인으로 나선 조직이었기에 15년간 그 어떤 탄압과 분열에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참으로 민족, 민중을 지향했기에 15년을 빛나게 장식할 수 있었다.
‘90년대 범민련운동은 조국통일 3대 헌장 관철로 총화하다.
‘90년대 범민련운동은 <조국통일 3대 원칙>, <전민족대단결강령>, <연방제창립방안>을 구성내용으로 하는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총화되었다. 돌이켜보면 범민련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북해외의 단합에 기초하여 민족대단결을 더욱 확장하는 실천과정이었으며 신념화하는 과정이었다. 또 조국통일의 원칙이자 목표는 민족자주임을 일관되게 제기하고 투쟁해 온 반미투쟁사였으며 미국의 전쟁책동을 때마다 짓 부시고 북미평화협정체결을 촉구하며 평화통일의 민족의지를 새겨온 과정이었다. 특히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를 갖고 있는 조건에서 현실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연방제통일방안을 민족총의로 합의하고 관철해 온 과정이었다.
결국 범민련은 ‘90년대 모든 통일운동 방향과 실천을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고스란히 담고 그 힘으로 2천년대 가까운 시기에 기필코 조국통일을 이룰 굳센 의지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빛나게 세워냈다.
 
6.15시대 범민련의 과제
 2000년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범민련은『변화된 오늘의 새로운 정세는 나라의 통일은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진정으로 조국통일을 바라는 모든 애국역량이 함께 연대하여 전민족적인 통일대진군을 더욱 힘차게 벌여 나갈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있음을 천명하였다.
이어 2000년 11월 18일 범민련 임시공동의장단 회의 기조보고에서는 『남북(북남)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은 지난 대결시대의 사고와 관점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격동적인 것으로서 통일운동의 앞길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고』있다고 환기하였다.
이로써 범민련은 자기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을 잘 총화한데 기초하여 긍지높게 새 시대, 6.15시대를 힘차게 맞이해 나가야 했다. 뿐만 아니라 6.15시대의 특징을 정확히 꿰뚫고 그 힘을 타야 했으며 그 길에 과정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요구되는 단결에 대한 방식, 공동실천에 대한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 요구되었다.
범민련의 6.15공동선언 실현 노력과 남측 실정
2001년 2월 13일 범민련 특별 임시공동의장단 회의 결정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범민련은 남북(북남)당국이 민족자주와 통일의 길로 나가기로 선언한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대결시대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온 겨레와 함께 통일운동의 새로운 민주적 길을 열어나갈 것이다.』
또 기조보고를 통해 『범민련은 전 민족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거불문의 원칙에서 남북(북남)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단체와 사람이라면 그 어떤 단체건...관계없이 함께 손잡고 나갈데 대한 폭넓은 입장을 표명하고...연대와 단결의 실천적 모범도 보여 주었습니다...무엇보다도 범민련은 지난 시기 민족자주와 대단결,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연대와 단합의 경험과 토대를 가지고 있는 전국연합을 비롯한 운동단체들과 더 굳게 연대 단합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결성단계에 있는 남의 <6. 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협력해...나가야 합니다....범민련은 현 정세의 요구에 맞게 자기 대오를 더욱 튼튼히 꾸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남측본부를 강화하는 것은 곧 범민련을 강화하는 기본고리입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내부의 단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기 대오를 더욱 확대 강화해 나가야』한다고 하였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000년 초 분규로 어수선한 조직을 재정비하는데 우선 주목하고 범민련 남측본부의 계통상에서나 성원들 자발적으로나 6.15공동선언 해설 사업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이 일꾼들의 합법적이고 구체적인 힘으로 잡히기에는 2001년, 2002년, 2003년을 경과하면서였다.
범민련이 <대결시대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남측당국은 대선향배와 새 행정부의 의중을 기준으로 6.15공동선언 위상을 가늠하려고 했고 미국 부시정권의 눈치를 살펴야 했으며 그 간에 남측당국은 6.15공동선언을 전술적이고 기만적으로 취급하기도 하였다. 즉, 공안당국은 건재하고 한총련 학생들은 계속 침탈을 당하였으며 심지어는 범민련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남측당국이 6.15공동선언 취지와 정신에 맞게 행정을 다루지도 못했다.
아무튼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6.15공동선언을 들고 지역별로 선전마당을 열어 대중들과 함께 6.15공동선언의 배경, 내용, 전망을 공유하였으며 동참을 호소하였다
범민련은 금강산에서 또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6.15공동선언 발표 기념대회와 8.15민족대회가 애국대중들 속에서는 민족대단결을 실질적으로 광범위하게 일구고 사회지도층에서는 급팽창하는 민족대단결 세를 온전히 반영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즉, 통일운동의 합법화 내지는 합법적 분위기를 적극 만들어 갔으며 한청, 한총련, 범민련과 같은 통일운동단체들에 대한 선별배제, 차별화를 반대해 나섰다. 특히 범민련은 전민족적으로 형성된 6.15공동선언 지지 층을 구체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범민련 남측본부는 광범위한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2001년 3월에 통일연대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2001년 9.11부터 본격화된 부시의 침략주의와 2003년 새로 집권한 남측당국의 애매한 행보 속에서 6.15공동선언을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그 지지 세력을 조직하는 합법적인 활동은 범민련이 함께하려한 만큼 제 단체 속에서 과감하게 전개되지 못하였다. 긴장되는 상황속에 이적규정에 씌운 범민련의 활동 성과야 저조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만든 통일연대의 합법적 활동은 6.15공동선언의 위력을 믿고 대담하게 크게 전개되었어야 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6.15시대 우리가 어떻게 통 큰 단결을 이루어 낼 것인가를 전제하면서 보다 자기혁신적인 관점에서 가까운 경험들을 더 큰 힘의 원천으로 만들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위력을 믿고 정면 돌파해 나간 범민련
한편, 2001년 부로 세계정세는 전쟁광 부시의 부정 당선으로 급속히 냉각되었으며 그 부정적 여파가 <한>반도로 즉각 끼쳤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미국 군산복합체 자본을 대표하는 부시는 노골적으로 전쟁을 선동하였다. 전쟁광 부시는 전임 클린턴 때 마련된 북미공동코뮤니케의 후속으로 이어야 할 북미대화를 전격 중지하였다. 2001년 9.11 미국발 테러를 기점으로 부시는 가면을 아예 벗고 침략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미국의 천연가스 파이프가 관통해야 할 나라, 중국의 배후로 되는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지 아프간이 부시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2002년 1월에는 이란, 이라크, 이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을 공공연히 위협하였다. 2002년 6월에는 효순이 미선이가 미제의 장갑차에 무참히 깔려 죽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전쟁반대 미국반대, 살인미군 처벌과 미군철수를 위해 전력을 다해 투쟁하였다. 물론 간교한 부시는 이에 아랑곳 없이 2002년 11월 북미제네바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원자로 가동중단에 따른 대북 보상용 중유공급을 중단 선언하였으며 <한>반도에 핵전쟁의 먹구름을 짙게 드리웠다. 2002년 12월 19일 남측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이었다. 북미제네바협약 파기는 부시와 한나라당 반통일세력들이 어떻게든 정권을 잡기 위 남측 민중들에 한 전쟁협박이었으며 대북침략을 더욱 노골화한 공갈이었다. 범민련은 <미국반대 한나라당 반대 6.15공동선언 이행정권 지지> 내용으로 대선방침을 정하고 각방에서 대선투쟁을 전개하여 승리하였다.
2003년 1월 24일 범민련 임시공동의장단 기조보고에서는『6.15공동선언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 민족이 변함없이 들고 나가야 할 조국통일의 영원한 기치입니다. 범민련조직들은 올해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높이 추겨들고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차게 벌여나가야 할 것』을 천명하여, 반동화되는 내외정세를 6.15공동선언의 위력으로 돌파해 나갈 것을 강조하였다.
전쟁광 부시는 2003년 3월, 사우디 다음으로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을 자랑하고 중동의 중심부로 되는 이라크를 침략하였다. 그리고 남측 당국에는 이라크파병을 강요하였으며 기어이 남측 당국은 4월에 서희, 제마부대 1진을 보냄으로써 우리 군을 미국의 용병으로 바쳤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즉각적으로 모든 조직을 가동하여 전쟁반대, 미국반대, 이라크파병저지 투쟁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였다. 모든 조직들은 2003년 내내 거리마다에서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군을 구속, 처단할 것과 이라크 침략전쟁 즉각 중단, 파병중단을 요구하며 선전하고 시위하였다. 특히 2003년 12월에는 우리 군 3천명의 추가파병을 앞두고 <이라크파병저지 반미애국단식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하였다.
2004년 1월 29일 범민련 임시 공동의장단회의 기조보고에서는『오늘 우리민족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지키느냐 아니면 미국에 의해 또다시 대결과 전쟁의 길에 들어서느냐 하는 엄중한 기로에 놓였습니다. 최근 미국은 남쪽과 그 주변에 첨단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이남주둔 미군을 신속기동무력으로 개편하면서 조국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어 『미국의 이 모든 책동들은 전체 우리민족에 대한 전면도전이며 횡포 무도한 침략과 간섭행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우리 민족제일주의 기치아래 민족공동의 적인 미국의 간섭과 전쟁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이 나아갈 길을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갈 때』임을 분명히 하였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 대 미국의 전면전이 예상되는 시기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앞당>겨 온 기세를 더욱 강고하게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2004년 범민련은 <우리 민족제일주의 기치 아래 민족공조로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자!>는 구호아래 범민련 안팎으로 민족성과 주체성 그리고 민족공조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우리 민족의 유구성, 선진성, 단일성, 자주성을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에서 계속 탐구하고 대중 속에서 전파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탈을 받거나 국난을 당하면 전민족 구성원이 하나같이 단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왔던 것을 상기하며 오늘 민족공조를 힘차게 경주하고 있다.
2004년 3월에는 부시의 <한>반도 전쟁음모를 현실화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획책된 한나라당의 탄핵소동을 짓 부셨다. 특히 탄핵반대 투쟁은 승리하였지만 탄핵반대 투쟁과 17대 4.15총선이 이어지면서 일부 탄핵반대 투쟁장이 <반한나라당, 6.15공동선언이행>이라는 기준을 뛰어 넘어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정파 이해를 관철하는 각축장이 되는 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과제로 되었다. 아무튼 4.15총선도 승리하였으며 범민련의 6.15공동선언 이행의지가 뚜렷이 관통되었다. 
또한 6.15공동선언 발표 4주년을 기해 인천에서 개최된 <우리민족대회>가 더욱 대중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북측 동포를 환영하는 분위기와 조건을 남측 당국이 보장할 것과 한총련, 범민련에 대한 선별배제를 거두고 6.15공동선언 정신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였다. 특히 인천에서 <우리민족대회>가 치루어 지는 만큼 인천의 민화협, 종단, 시민, 노동, 통일연대 그룹들이 차제에 6.15공동선언 이행에서 더욱 단결할 것을 힘 기울였다. 그러나 그룹들간에 공명정대하고 협동적인 관계가 원만하게 보장되지 못한 점을 범민련 남측본부가 어떻게 단결의 방향에서 극복해 나갈 것인가 숙제로 남게 되었다. 더구나 범민련 남측본부가 통일연대로 있으면서, 통일연대 자체도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켜보고 상호개선하여야 할 단위인 조건에서 통일연대와 그 외 단체와의 연대를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행동방식으로 보장해 나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6.15시대 범민련의 과제는 뚜렷하다.
안으로는 실력을 키우고 혁신하며 6.15공동위원회를 확대, 강화하는 기조에서 미군철수투쟁을 위한 대중진지, 민족진지를 마련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국가보안법철폐, 미군철수투쟁을 더욱 완강하게 벌려내는 것이다.
2005년 2월 10일 북은 핵보유선언으로 상황을 결정적으로 정리해 버렸다.
3월 초에는 6.15공동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05년 3월 22일 열린 범민련 임시 공동의장단 회의 기조보고에서는 『우리 겨레는 지난 3월 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시키려는 일념으로부터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 북(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남과 북(북과 남), 해외의 범민련조직들은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 북(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전민족적인 통일운동기구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하는데서 핵심적이고 주동적인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범민련은 올해에 6.15공동선언발표 5돌, 조국광복 60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들에 적극 참가할 뿐만 아니라 이 행사들의 성과적 진행을 위하여 분투함으로써 이를 계기로 우리 민족의 단합된 모습과 위력을 내외에 힘 있게 과시하는데서 큰 몫을 담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올해 우리 범민련 앞에 부과된 무겁고도 책임적인 과업들을 철저히 수행하려면 범민련조직을 더욱 확대강화하고 자기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나가야』한다고 했다. 
또 결정서에서『범민련은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기발을 높이 들고나가자!》는 구호를 올해 통일운동의 기본구호로 추켜들고 3대공조 실현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 나갈 것』을 천명하였다.
어떤 측면에서나 6.15시대는 범민련 남측본부가 자기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 요구되었다. 그것은 여러 민족행사에서 준비과정부터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이 많이 적극 참가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 행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주체로 내세워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배려하는 역할이기도 하며, 민족대단결의 광장을 민족자주의 결전장으로 전변시켜 나가는 정치력이기도 하다.
6.15공동위원회에서 범민련이 그렇게 내용을 세우고 활동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뿐이겠는가 6.15공동선언이 실현되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경로에서부터 연방통일정부의 시책에 이르기까지, 참가하든 관망하든 대중들의 곁에서 그에 맞게 해설하고 민족대업의 희망을 공유하고 민족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자신있게 결속하고 하나같이 민족자주의 길로 뭉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범민련이 앞서 밝혀주고 실천하면서 통일의 길에 이제 막 나서는 사람들의 친근하고 실력있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는 6.15시대 범민련이 계속 들고 가야할 생활, 활동, 투쟁지침이다. 특히 범민련은 조국통일 3대 공조가 6.15공동위원회에서 상식이 되고 지침이 되고 단결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하며 반미대열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켜 내야 한다.
그러자면 가리지 말고 만나야 하며 가리지 말고 가야하며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수많이 나열되고 수많이 경로를 세우고 수많이 분공되겠지만 범민련의 6.15시대 임무는 넘쳐나고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6.15공동선언 발표 5돌을 경과하면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15돌에 즈음해 자기의 과제를 더욱 점검해 나갈 것이며 실사구시적으로 <범민련 공동의장단 결정서>를 관철해 나갈 것이다.
범민련 남측본부가 여전히 이적규정에 옭아매진 조건 속에서, 범민련을 더 강화하고 연속선상에서 그 힘으로 6.15공동위원회를 강화하든, 거꾸로 6.15공동위원회를 강화하고 연속선상에서 그 힘으로 범민련을 강화하든 이미 멀리 전진해 있는 범민련운동을 견결히 하면서 동시에 6.15공동위원회가 얼른 그 수위로 되도록 강화해야 한다.
범민련 남측본부의 6.15시대 과제는 범민련의 역사성과 정통성, 선진성과 역동성 그리고 정치적 성과를 어디서든 계승해 내는 것이며 6.15시대가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기초해 자주성을 실현하는 실천 시기인 만큼 민족자주를 완수하는 것이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6.15공동위원회가 6.15시대 통일운동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려는 위상에 맞게 6.15공동위원회 확대, 강화에 적극 복무해 나갈 것이다.
범민련의 임무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범민련을 사랑하는 수많은 일꾼들은 엄혹했던 ‘90년대 범민련운동을 잘 지키고 수행해 왔듯이 충분히 감당해 나갈 것이다. 특히 6.15시대 범민련운동이 더욱 전진할 수 있기 위해서는 ’90년대 범민련운동에 연을 갖았고 오늘에서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활약하고 있는 애국대중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이 계속 요구되고 있다. 그리하여 6.15시대 범민련운동의 승리와 영광이 실로 7천만 겨레의 것으로 총화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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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18 범민련자료 자주교류 3차 보고서 범민련남측본부 08-12 3554
17 범민련자료 자주교류 2차 보고서 범민련남측본부 08-12 3586
16 범민련자료 자주교류 1차 보고서 범민련남측본부 08-12 3604
15 범민련자료 2002 정세 및 통일운동의 진로(안) 범민련남측본부 08-12 3626
14 범민련자료 9.17 현재 남북 교류협력 사업 정리 범민련남측본부 08-12 3669
13 범민련자료 6.15공동선언 발표 6돌과 ‘우리민족끼리’ 범민련남측본부 08-11 3639
12 범민련자료 2006년 정세전망 및 사업계획 범민련남측본부 08-11 3539
11 범민련자료 2006년 정세전망 및 사업계획(초) 범민련남측본부 08-11 3474
10 범민련자료 해외민주통일인사들의 명예회복과 귀국보장… 범민련남측본부 08-11 3779
9 범민련자료 [소고] 결성 15돌, 범민련운동의 정치적 성과… 범민련남측본부 08-11 3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