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문한영

1919-1996

본문

[ 약력 ]

1919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30년 10대의 노동자로 원산부두 노동자파업에 참가

1944년 ‘건국동맹’ 원산지부 참여

        일제패망 뒤 ‘건국준비위원회’ 참여

1946년 대한독립노동총연맹 선전부 차장

1947년 대동청년단원

1948년 ‘청운사’ 출판사 경영

1960년 4월 혁명 뒤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 상임위원회 조직위원장

1960년 5.16 쿠테타로 투옥, 민자통중앙협의회 사건으로 징역10년 선고

19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 재건에 힘씀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1996년 4월 18일 운명. 수유리 도봉산묘지에 안장 

[ 생애활동 ]

선생은 일제의 조선강점 시기에 민족적 항거가 있었던 ’19년 원산 부두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쳤다. ’30년대 10대 노동자로 원산부두노동자 파업에 참가하였고, ’44년엔 항일운동체인 ‘건국동맹’ 원산지부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일제패망 뒤 서울에서 여운형, 안재홍 중심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고, 이승만의 독재가 노골화되던 때 조윤재, 김시현, 이종률, 유시태, 박영식씨 등과 함께 ‘민족건양회’에 참여하며 책임간사로 활동하였다.

1960년 4월 혁명 뒤에는 진보세력의 통일운동전선체인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에서 조직위원장으로 피선되어 활약을 하였으나 5.16군사쿠데타로 투옥되어 혁명재판에서 1심 사형, 2심 무기, 3심 15년이 확정되었으나 1967년 12.25 특사로 나올 때까지 7년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군사정권시절 온갖 박해 속에서도 의연히 통일을 염원하며 ’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협의회’ 재건에 함께 하였고 공동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선생은 바다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여유와 옳지 않은 것을 정화시킬 수 있는 높은 도덕성과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품을 가졌다. 배타적 주장이나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듣고 말없이 실천하였으며 당신의 행적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서슴없이 스스로를 비판하며 옳은 길을 갔다.

그래서 선생의 장례식이 있던 날은 평소에 선생과 뜻을 같이 했던 전국의 많은 동지들과 후배들, 그리고 민족민주운동단체 일꾼들과 선생을 존경하고 따랏던 소장학자들까지 모여 기둥 잃은 슬픔으로 오열하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