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권중희

1936-2007

본문

[ 약력 ]

1936년 경북 안동 출생

1982년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잡지를 통해서 자신의 역적행위를 부인한 것에 격분하여 추적 시작

1987년 대로상에서 ‘정의봉’으로 1차 응징 구속수감 후 6개월 집행유예로 출소

1991년 2차 응징

1992년 3~5차 응징

1996년 박기서 선생(택시기사)이 안두희 처단

2004년 1. 31 미국정보당국의 백범 암살배후 근거를 찾기 위한 출국

        2. 1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조사 시작

        3. 17 주요내용 파기로 큰 성과 없이 귀국

2004년 7월 민족정기구현회 설립, 누리집 중심 활동

2004년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고문. 6.15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고문

2007년 11월 16일 자택에서 집필 중 급서

2007년 11월 20일 민족통일애국지사 故 한길 권중희 선생 사회장.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 생애활동 ]

선생은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판명난 안두희에 대한 처벌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정부에 탄원을 해 왔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선생은 1982년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잡지를 통해서 자신의 역적행위를 부인한 것에 격분하여 안두희에 대한 추적을 시작, 87년 대로상에서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응징하였고 

이에, 구속, 출소한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백범 암살에 대한 진상규명 운동을 진행하였다. 

93년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자서전을 집필하고 2004년에는 미국정보당국의 백범 암살배후 근거를 찾기 위해 출국하기도 하였다. 

출국 후 2월 1일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조사를 시작하였지만 주요내용이 파기되어 귀국, 그해 7월 민족정기구현회를 설립하였다. 

2004년부터는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고문,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고문 등 통일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으며 2007년 11월 16일 자택에서 집필 중 운명하였다.


[ 활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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