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이범영

195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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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55년 강원도 원성군 출생, 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76년 12월 유신반대 시위주도로 구속, 항소심에서 2년6개월 선고받음

1979년 7월 형집행 정지로 출감, ‘전국 병역대책위원회’를 조직, 위원장으로 활동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집행국장

1988년 민청련 의장

1990년 전국 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

1991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준비위원회 실행위원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1994년 8월 12일 담도암으로 운명,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 생애활동 ]

선생은 ’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신 후 청년운동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 활동하였다. ’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집행국장으로 활동 후 민청련과 한청협 의장을 역임하시고 ’94년에 지병으로 운명하였다. 선생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위대한 사상가도, 뛰어난 경세가도, 불세출의 지략가도 아니었다. 더더구나 천재의 광휘가 번뜩이는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바 선생은 마흔 해를 살다간 사람의 자연인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은 많은 장점과 동시에 많은 단점을 내보이며 열심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수다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흔치 않는 삶을 산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못한다. 선생은 개인의 안일과 욕망을 뒷전으로 밀쳐놓고, 이 사회와 세계를 뒤바뀌고자 했던 혁명가, 운동가, 활동가였다.


끓는 피!

이것은 젊음의 권리이다.

젊음을 잃고, 장년·노년이 되면

젊은 때의 모든 동기와

이상을 잃고 안일무사에 빠진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신념대로

사는 사람도 많다. 그들이 바로 위대한 사람이다.

죽을 때 무엇 아쉬움 없이

죽어야 한다. 욕심을 채우다 보내면

어찌 살았던 사람이랄 수 있을까?

들에 있는 한낱 잡초도 자기 한일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1972년 10월 고 이범영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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