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윤영규

1935-2005

본문

[ 약력 ]

1935년 10월 10일 광주시 금동에서 태어남

1960년 4.19혁명 때 대학생 대표로 참여, 혁명 수습위원 지냄

1961년 목포 영흥중학교 교사 첫 부임, 부당한 도장찍기 거부하여 한 달만에 파면

1961년 한국신학대학 졸업

1963년 도덕재무장운동(MRA) 전라남도 지부 창설

1967년 광주상고 교사 부임

1976년 광주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청소년 동아리 지도,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 교직 해임

1977년 광주YMCA청소년지도자협의회 창립 주도

1978년 광주양서협동조합 창립

1980년 5.18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내란죄, 소요죄로 구속

1982년 전국YMCA교사협의회 창립 참여

1983년 나주중학교 교사로 부임

1984년 전남 민주회복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1986년 전국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장으로 ‘5·10 교육 민주화 선언’ 주도 

1987년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 초대 회장

1988년 전국교사협의회 2대 회장, 광주 체육교 교사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1~3대 위원장(~1991년)

1991년 강경대열사 살인규탄 및 공안정국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활동

1991년 민주쟁취국민연합 전국의장

1991년 민족민주평화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

1991년 범민련 결성 준비위 부위원장

1993년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

1994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전국의장

1994년 5·18기념사업위원장

1995년 광주광역시 교육위원회 부의장

1998년 충장중 복직

1999년 민주개혁국민연합 전국상임공동의장

1999년 충장중학교에서 정년퇴임 

2000년 5·18기념재단 4대 이사장과 광주인권운동센터 회장

       늦봄 문익환학교 설립추진 준비위원장, 동아시아 평화인권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전국의장, 광주 무진교회 장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도자문위원 

2005년 3월 31일 오후 9시 30분 운명, ‘참스승 고 윤영규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장례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 생애활동 ]

선생은 1936년 10월 10일 광주(光州)에서 태어나, 1961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4·19혁명 때 대학생 대표로 참여한 뒤, 혁명 수습위원을 지냈다. 이듬해 목포 영흥중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단에 몸담아, 1963년 도덕재무장운동(MRA) 전라남도 지부 창설을 주도하였다.


1976년 광주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청소년 동아리를 지도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교직에서 해임되었다.

1978년 광주양서협동조합 창립을 주도한 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다시 구속되어 8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83년 나주중학교 교사로 부임해 이듬해 전남 민주회복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을 거쳐, 1986년 전국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장으로 교육민주화선언에 참가하였다가 4개월간 구금 생활을 하였다. 이듬해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장, 1988년 전국교사협의회장을 지낸 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1~3대 위원장을 지냈다.


1991년부터 2년 동안 강경대 열사 살인규탄 및 공안정국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활동으로 수배 생활을 하였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1998년 복직할 때까지 민주쟁취국민연합 전국의장(1991), 민족민주평화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1991),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1993),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전국의장(1994), 5·18기념사업위원장(1994) 등을 지냈다.


그 뒤에도 민주개혁국민연합 전국상임공동의장(1999),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광주인권운동센터 회장(2000) 등으로 활동하였다. 평생을 한국의 교육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힘쓴 인물로, 2005년 4월 전국 시민단체의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주검은 5·18공동묘지에 묻혔고,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 활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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