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류낙진

192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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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28년 10월9일(음력8월26일) 전라북도 남원군 이백면 과립리에서 출생

1933년 부모따라 일본땅으로 이주, 일본에서 소학교(8년), 사범학교(5년) 수학

1946년 2월경 귀국, 고향에 정착

1950년 5월 국민대학 수학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시 군당 선전부 활동

1950년 9월28일 9.28후퇴 후 입산(순창, 회문산 등지에서 특공대 대장 활동)

1952년 3월 지리산에서 체포, 광주 포로수용소에 투옥

1952년 3월30일 피검 군법재판소에서 사형선고 받음

1952년 10월 민간재판소로 이양돼 광주지방법원에서 5년 선고

1957년 10월3일 비전향 만기출소

1957년 신애덕 선생과 결혼

1963년 혁신정당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1967년 5년간 전남 보성 예당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71년 3월 호남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체포, 서울지법에서 사형선고

1972년 서울고법에서 무기선고

1972년 대법에서 무기확정

1972년~1989년 5월까지 광주교도서에서 복역

1989년 전주교도소로 이감

1990년 2월 20년 감형출소(보안관찰 대상자 처분)

1994년 7월 구국전위사건으로 구속(서울지법 무기선고, 고법 8년 선고, 대법원 상고포기 형확정)

1999년 류락진 선생 석방추진위원회 발족

1999년 8월15일 특별사면으로 비전향 석방(보안관찰 처분)

2002년 5월30일 광주지법, 백운산지구 위령비 비문 작성 사유로 불구속 입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선고(국가보안법 7조 위반)

2000년~2003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01년~2003년 범민련 남측본부 조직위원으로 활동

2000년~2005년 통일광장 임원

2005년 4월1일 23시45분 향년 78세로 영면, 파주 보광사 통일 애국인사묘역에 안치되었다가 남원선영에 묻힘

[ 생애활동 ]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으로 활동했다가 구속되었으며 이후 1971년에는 호남통혁당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1990년 가석방된 선생은 쉬임없는 활동을 하다가 19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안기부에 의해 재검거 되었다. 

1999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던 선생은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에 참여하였고, 2005년 한평생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삶을 마감하였다.

[ 활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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