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윤이상

1917-1995

본문

[ 약력 ]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 덕산면에서 선비 출신의 부친 윤기현과 농가 출신의 모친 김순달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920년 통영으로 이주 

1935년 일본 오사카음악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작곡과 음악이론, 첼로 등 수학 

1937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화양학원(보통학교 과정)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함 

1944년 징용 중 반일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두 달간 옥고를 치름 

1950년 1월 30일 부산사범학교 국어교사 이수자 여사와 결혼. 부산대학교에서 서양 음악사를 강의

1955년 4월 11일 작곡가로서 최초로 〈현악4중주 1번〉과 〈피아노3중주〉곡으로 1955년 제5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59년 7월 서베를린 음악대학 졸업. 9월에 네델란드의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을, 다름슈타트에서〈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프란시스 트래비스의 지휘로 초연해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  

1967년 6월 17일,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베를린에서 서울로 납치됨.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부인과 함께 기소됨 

1969년 3월 30일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 등에 힘입어 석방돼 서베를린으로 돌아옴. 6월 23일 킬 문화상 수상  

1977년 8월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한민련) 유럽본부 의장으로 추대 

1977∼87년 베를린예술대학 정교수로 재직 

1981년 5월 8일 퀼른에서 교향시〈광주여 영원히!〉초연 

1984년 12월 5일 평양에서 윤이상음악연구소 개관  

1988년 5월 21일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 수상

1990년 10월 제1회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 12월 16일 베를린에서 발족한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에 당선 

1994년 9월 예음문화재단 주최로 서울, 부산, 광주 등지에서 ‘윤이상의 음악축제’개최 

1995년 5월 9일 민주화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청년들을 위해 지은 교향시 〈화염속의 천사〉를 일본서 발표. 독일에서 괴테상 수상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영면

[ 생애활동 ]

1935년 일본에서 음악공부 후 귀국하여 교사생활중 징용, 반일활동 혐의로 옥고를 치룸. 67년 독일에서 음악가로 활동 중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국제적인 항의속에서 2년 뒤 석방됨.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한민련) 유럽본부 의장,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 등을 통하여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함. 

1995년 5월 9일 민주화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청년들을 위해 지은 교향시 〈화염속의 천사〉를 일본서 발표하기도 함.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영면

[ 활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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