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김규철

193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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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4년 부산 출생(4남매중 장남)

1948년 2.7구국투쟁 당시 고교생으로 단선단정반대 시위로 검거 

1950- 53년 전쟁시기 아버님 학살. 온 식구가 모진 탄압과 피난생활.

      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 53학번 법학과 입학

      박창증, 이상배 등과 서클활동을 하며 동지들과 교류

1954 - 60년 대학 중도 휴학 

      생업을 위해 학원강사, 고등학교 강사 등 생업에 치중

1960년 4.19 혁명 이후 교원노조 북부산고등학교 분회 활동, 

      부산지구 중등교원노조 결성대회, 교원노조 합법화운동, 단식투쟁 참가

      민족민주청년회, 2대악법 반대투쟁 등 활동

      학생단체 민민청, 성민학회, 암장, 후진성극복연구회 등과 교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세력에 의해 투옥(5월) 8.15 특사로 출소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시 5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집행유예로 6개월 만에 석방.

967년 당시 초등학교 교사이며 인혁당 사건 옥중동지인 이상배씨 여동생인 이영자씨와 결혼

1968년 교사로 복직

1972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 지하서클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적용 5년 선고받고 복역. 

       이때 부인 이영자씨는 빨갱이 가족이라 하여 해직

1977년 5년 만기출소 이후 생업종사, 전국 명산 등반. 케이블 TV 사업 - 코리아케이블정보통신(주) 대표

19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재건사업 합류

1997년 중국 용정 문익환목사 남북해외 공동추도식 참석 건으로 남북교류협력법 구속

1998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상임의장

2000년 2000년 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2001년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2001년 서울통일연대 상임대표

2001년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남측본부 집행위원장

2001년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평양)에 참석. 

       3대헌장기념탑 방문 등으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구속.

2002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지도위원

2004년 2004 통일선봉대 총대장

2005년 6.15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공동대표

2007년 범민련 서울연합 명예의장

2013년 7월 - 14년 11월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직무대행

2014년 서울진보연대 고문

2019년 3월 16일 오후 11시 40분 지병으로 영면(향년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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