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김세원

193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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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김세원 선생 약력

(1931년~1995년 향년 64세)


1931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1946년 중학교때 민청에 가입

1948년 2.7구국투쟁과 7월 지하선거때 군경에 2개월간 구속됨

1948년 여순봉기 후 빨치산으로 활동하며 군당의 연락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되어 극적으로 살아남

1950년 6월 청풍초등학교 교사재직 중 6.25전쟁 맞음

1950년 7월 인민군이 화순에 진주 할 때 화순군 학도자위대장과 군당 선전지도원으로 활동, 청풍인민학교 교양주임(교감) 재직중 9.28 인민군 후퇴로 입산

1951년 9월 빨치산 활동중 체포되어 연행, 자수서를 쓰고 훈방, 광주대성대학 2학년 편입

1952년 8월 광주에서 가두검색에 걸려 제주도 제1훈련소에 강제 입대

1952년 9월 갑종 간부후보생 41기로 광주보병학교 입교

1953년 3월28일 육군소위임관, 7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양구 9,38고지, 화천지구 참전 중 7.27휴전 맞음

1955년 3월 31사단 창설 장교로 차출되어 광주에 돌아옴

1955년 9월 폐결핵으로 여수 15육군병원에 입원

1958년 3월 제대

1969년 7월 사회대중당 전남도당 유세부장으로 순회강연

1960년 11월 사회당 중앙위원 겸 전남도당 준비위원회 선전위원장, 민자통 중앙대의원

1961년 5.16군사쿠데타 발생이후 이기홍, 서동원, 우동읍, 김배영, 도예종 등과 서울에서 만남.

광주에 내려왔다가 간첩으로 오해한 경찰의 체포작전으로 3년 3개월 동안 은신생활.

결핵이 재발하여 505 cic(방첩대)에 자진 출두하여 한 달간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

민정이양으로 특별법이 말소되어 면소처분으로 석방

1971년 경락연구회 조직

1978년 3월 수배중인 이재문과 만나 남민전 준비위에 가입. 호남 지구책을 맡음

1979년 10월 남민전 관련자 전원 검거. 신병으로 불구속 기소

1980년 2월 징역 3년 선고, 2심대기중 5.18광주항쟁 맞이함

1988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결성에 참여, 공동의장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고문

1991년 민자통 광주전남회의 의장, 범민련 결성 준비위원회 실행위원

1994년 범민련광주전남연합결성에 참여, 범민련(준)광주전남연합의장

1995년 10월 9일 폐질환으로 운명. 피골이 상접 할 정도로 쇠약해져 당시 몸무게가 45kg이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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