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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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일지 ]

1월 20일 「전대협」(의장대행 정명수),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수락“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 앞 편지]

1월 21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 결성대회,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예비실무회담제안서>발표

1월 27일 ‘남북 교수, 학생교류추진협의회 자문위원회’(위원장 서돈각) 첫모임. 지학순, 변형윤 등 각계인사 11명으로 구성하고 교육계 및 학생단체 대표 15명으로 구성되는 ‘남북학생교류 추진위원회’와 교수 및 학술교류를 추진할 ‘남북교수, 학술교류 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


2월 1일 임종석(전대협 의장),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 문교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전대협 측의 답신을 즉각 북한 측에 보내줄 것”을 촉구

2월 4일 문익환, 백기완, 북 김일성 주석이 제의한 ‘남북정치협상회의’ 공식수락[기자회견]

2월 10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 ‘남북의 대학신문 기자 대표간 판문점 회담’ 제의[총회 결의]전국대학기자연합회는 ① 세계청년학생축전때 남북대학신문 공동기자단을 구성해 취재 보도할 것 ② 남북대학신문간의 학술, 정보자료 교환 ③ 대학신문기자들의 남북 상호방문을 통해 실상보도 등을 북측에 제안 

2월 15일 북의「조평통」, ‘3.1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 수락

「전민련」, 3.1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 대표단 명단(오충일 외 9명)및 의제 발표[기자회견]

① 범민족대회 대표단 구성, 해외동포 참가 문제

② 범민족대회 행사내용, 일정, 장소문제

③ 분과별 범민족대회 추진문제(회의내용, 형식, 일정 등)

④ 예비회담 대표들의 남북상호 방문 때 신변보장문제

⑤ 남북간 민간교류 전면자유화 및 민간차원 각종 행사의 정례화문제

⑥ 조국의 평화와 통일방안에 관한 문제


3월 1일 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 당국의 원천봉쇄로 무산. 예비회담 참석차 판문점으로 가던 전민련 대표단 28명 전원 경찰에 연행

3월 11일 「범민족대회 유럽추진본부」결성(서베를린)

「전대협」, ‘제13차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위한 공청회’ 개최

3월 13일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위원장 정용석), 북 13차 세계 청년학생축전 조선 준비위원회(위원장 최용해)에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문제, 남북대학생 조국순례대행진 추진문제, 남북대학생 친선체육경기대회 교환개최 문제 등 남북대학생 교류문제를 의제로 한 ‘남북대학생 교류회담’을 갖자고 제의

3월 15일 「전민련」조통위, 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 4월7일 판문점개최 제의. 「전대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 3월16일 판문점개최 예정인 남북실무접촉을 4월 중순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

북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조선준비위원회.조선학생위원회,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와의 조건부 회담 통보

3월 18일 「범민족대회 북미주 추진본부」 결성(미국 뉴욕)

3월 25일 문익환 목사(유원호, 정경모 대동) 평양방문(전민련 고문이기도 한 문익환 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침체상태에 놓인 남북통일 협상 및 민간차원의 접촉을 활성화 하기위해 유원호, 정경모씨 등과 함께 일본을 거쳐 평양을 방문.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남북 긴장해소를 위한 정치.군사 및 교류문제의 해결, 그리고 연방국가의 단계적 창설 방안에 관해 논의. 4월2일 허담과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4월3일 평양을 떠나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를 거쳐 4월13일 귀국하였으나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 구속됨. 재판부는 문목사에게 국가보안법상의 지령수수 및 잠입죄를 적용, 징역 7년을 언도.)

3월 27일 북 「천도교청우당」,「조국평화통일위원회」,「문학예술총동맹」 등 24개 정당. 사회단체들, 문익환 목사의 북 방북에 즈음하여 연합회의를 개최하고 민간접촉의 확대를 촉구하는 5개항 결의안 채택 

3월 29일 「범민족평화협의회(회장 조남기)」, ‘문익환 목사 방북에 대한 우리의 입장’발표

3월 30일 백기완 전민련 상임고문, “대중집회를 통해 북한 방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있을 경우 문익환 목사처럼 북한을 방북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

「범민족대회 일본지역 추진본부」결성(일본도쿄)

3월 31일 「전민련」조통위, 4월7일 갖자고 제의했던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연기 발표

전민련, 전대협, 전교협 등 재야운동단체, ‘문익환 선생 평양방문에 따른 제 민주단체 보고회’ 개최 


4월 1일 북「조평통」, 문 목사 방북과 관련한 성명 발표

「전대협」, 세계청년학생축전 국제준비위원회에 축전참가지지 결의 호소문 발송

4월 2일 문익환.허담, 공동성명 발표(평양)

4월 6일 문익환 목사, 노태우 대통령. 김대중 총재에게 통일논의 4자회담 

제의[도쿄기자회견]

4월 13일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1천5백여 명,‘문익환 선생 평양 방문 보고 및 환영대회’ 개최(연세대)

4월 19일 「전대협」 북 조선학생위원회에 4월28일 판문점에서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위한 실무회담을 갖자고 공개 제의

4월 25일 정부, 판문점에서 7월의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 북한이 전대협에 보낸 서한을 접수했으나 이 서한을 전대협에 전달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북한의 각종 서신이나 전화통지문을 접수하되 창구단일화의 원칙 아래 당국 간의 문제를 떠난 내용은 수신단체에 일체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 북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회’는 남의 정치계, 종교계, 사회단체대표, 학계 인사 55명을 ‘축전 명예손님’으로 초청

4월 28일 ‘제13차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위한 제2차 실무회담’, 경찰저지로 무산


5월 11일 전대협 제3기 출범식 집회(대전 충남대)

남북대화 북측대표단, 문익환 목사 석방 등 요구

5월 20일 북 ‘세계청년학생축전 조선준비위원회’, 남북의 6개 단체 대표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을 6월5일 서울이나 판문점에서 열자고 다시 제의


6월 1일 ‘전대협 평양축전 준비위원회’, 6월10일 남북학생회담 개최 제의

‘전대협 평양축전 준비위원회’, 전대협,전청협,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 등 3개 단체와 국토통일원이 참가하는 4자 회담 제의

6월 5일 북, 전대협이 제의한 6개 단체회담에 대해 지지 성명 발표

6월 5일 문규현 신부(전주교구청 소속), 평양도착(문 신부는 “언제까지나 소망의 외침을 민족의 절규만으로 그칠 수 없기에 평양을 방문하여 통일을 향한 민족의 하나 됨을 염원하는 불타는 이 마음을 김일성 주석에게 전하고 싶어 왔다고 도착성명을 발표)

6월 8일 「전대협」,통일원에 평양축전 논의를 위한 4자회담 요구

6월 10일 「전대협」, ‘6.10남북실무회담 방해 규탄 및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백만학도 결의대회’ 개최

6월 16일 국제학생동맹(IUS),7개 학생단체에 ‘남북학생회의’ 참가요청

6월 17일 「전대협」, ‘평양축전 참가 절차 정부 측에 일임“발표

6월 18일 북 ‘세계청년학생축전 조선준비위원회’, 전대협의 평양축전 참가문제와 관련하여 성명발표

6월 19일 「전대협」, 「전청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주관하는 「국제학생동맹」이 남한대표의 평양축전 참가문제를 논의키 위해 6월22~2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하는 ‘남북학생회담’에 대표를 파견키로 하고 정부에 협조요청

6월 19일 「전대협」, 남북교류추진위원회(위원장 정용석)에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협의 문 전달

6월 22일 임종석(전대협의장), ‘평양축전 참가 지지’ [국제학생동맹에 보내는 편지]

6월 24일 임종석(전대협의장), 「국제학생동맹」이 주최한 남북청년학생회담에 참석한 북쪽 청년학생 대표단과 30분간 국제통화

6월 24일 「전대협」, “6.25는 민족대단결․분단고착화의 근거가 아니라 민족화해와 조국통일의 절실함을 일깨우고 민족자주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로 돼야 한다.”[6.25 39돌 성명]

6월 26일 「서총련」, ‘통일민주인사 문익환 목사 석방과 자주적 남북교류 쟁취 결의대회’개최

6월 26일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첫 공판

6월 27일 「전대협」, 북측에 ‘남북학생선언’의 7월7일 공동발표 제안

6월 29일 「전대협」, 평양축전 대표 1명(임수경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년)

파견발표(전대협은 임수경 대표가 6월21일 서울을 떠나 일본 도쿄에서 27일 독일로 출발하였고 29일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거쳐 30일 오전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이 증서를 가진 학생은 남한 전대협의 대표이므로 모든 편의를 봐 달라”는 ‘협조요청서’를 임 대표에게 건네주었다고 밝힘)

6월 30일 임수경(전대협 평양축전 참가 대표), 평양도착

도착성명 요지 : ‘자동차로 불과 4시간이면 올 거리를 나는 24시간 비행하면서 그리고 열흘이라는 시간이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 이것은 남한정권이 반 통일세력이기 때문이다. 진정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좌경용공세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다. 돌아갈 때는 판문점을 통하고 싶으며 만일 한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겠다.’


7월 1~8일 북,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개막, 「전대협」 임수경 대표 참가

7월 4일 「전대협」, ‘임수경 학우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평양축전에 참가한 목적이 남측 일방을 비방코자 함이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이루고자 함에 있음을 자각해 달라”고 당부

7월 6일 ‘한반도 평화와 통일대행진 국제준비위원회’, 남북 종단 평화행진 추진

7월 7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남북청년학생공동선언문>발표

7월 9일 북 「조평통」위원장 허담, ‘90년 8월15일 판문점에서 북과 남 해외동포 대표들로 범민족대회 소집’제의[해내외 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평양)보고]

7월 13일 ‘범민족축전 추진본부(전민련 등 11개 재야단체 참여)’결성, <조국의 자주통일과 평화를 위한 범민족선언>발표

7월 20일 북 「조평통」허담위원장, 이홍구 통일원장관에게 “임수경양의 판문점을 통한 무사귀환 보장과 일체의 탄압금지” 촉구

7월 25일 「전대협」, 임수경학생 판문점 통과보장과 관련한 각종 성명발표

7월 27일 임수경학생, 문규현신부,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 통과 요구 농성

8월 12일 임수경 학생, <전대협 백만학도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며 8월15일 판문점 통과 강행 다짐

8월 15일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 판문점 통과 귀환[교황 요한바오로2세에게 보내는 서한]발표

9월 5일 북「조평통」, ‘범민족대회 연락위원회’ 구성 제의

10월 4일 고려대, 연세대 총학생회, ‘고연제’에 북 동문 초청 신청

10월 7일 「전민련」.「전대협」등 9개 사회단체, ‘국가보안법 철폐 및  양심수 석방을 위한 공동위원회’ 결성

10월 18일 경희대, ‘평양 고구려 유적지 답사 및 남북대학생 공동세미나’ 승인 신청서를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에 접수

11월 2일 고려대,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에 북 유학생 초청사업 승인신청서 접수.

 

[ 범민족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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