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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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일지 ]
3월 3일 「전민련」 2기 대의원대회에서 ‘8.15범민족대회’ 개최 결의
3월 26일 「전대협(의장 송갑석)」, “남북한간 자유왕래, 상호개방 실현을 목표로 6월10일, 7월7일, 8월15일 세 차례에 걸쳐 전대협 소속 1천개 학과 학생 10만 명의 방북 추진” 발표
3월 29일 ‘범민족대회 북측추진위원회’, ‘8.15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실무문제 협의’제의

4월 7일 ‘8.15범민족대회 준비를 위한 연락위원회’ 회의 (독일 베를린)
4월 15일 범민족대회 일본, 북미주, 유럽 등 3지역 본부의 실무대표자회의 일본에서 개최

5월 9일 ‘범민족대회 해외추진본부’, 전민련에 ‘범민족대회 준비를 위한 남북한 해외동포 예비 실무회담’ 개최 제안
5월 17일 6월 베를린에서 있을 남, 북, 해외 동포의 실무회담에 참석키 위해 통일원에 남북 접촉 승인신청서 제출.
5월 19일 국토통일원에서 불허 통고
6월 2~3일 범민족대회 1차 실무회담이 서베를린에서 해외추진본부와 북측 실무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림
6월 25일 「전대협」, 8.15범민족대회 참가 공식표명
6월 30일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지지 해외 한국동포대회’가 일본에서 열림

7월 4일 「전민련」, ‘8.15범민족대회’ 실행계획과 일정, 7월26일 서울에서 예비실무회담 개최 발표
7월 6일 「전민련」,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참가를 요청하는 서한 발표
7월 20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1차 임시집행위원회’ 개최,
노태우 대통령 ‘남북간의 민족대교류를 위한 특별선언(7.20선언)’발표.  
「전민련」, 7.20특별발표에 따른 ‘8.15범민족대회. 참가범위 확대결정 
- 대회주체 : 남북한 당국 및 제정당, 사회단체, 해외동포 등 포괄 
- 대회의제 :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개방, 긴장완화, 평화정책 통일방안 등
7월 23일 8.15범민족대회 추진위원 1차 모임 및 제2차 임시 중앙집행위원회
7월 24일 ‘8.15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 ‘범민족대회 개최 보장’ 촉구 성명
7월 25일 북, 전금철(8.15북측준비위원장) 등 5명의 대표단과 기자 10명을 26일 오전9시 판문점 거쳐 서울 파견 발표
7월 25일 「전민련」, 「전대협」, 주한미군 대사 (도널드 그레그)에게 공개토론 제의
7월 26일 범민족대회 2차 실무회담을 시도, 정부의 방해로 북측 대표단 참석 못함
7월 27일 해외동포단체 대표단 서울 도착, 남측대표와 해외동포단체 간에 제2차 범민족대회 실무회담 개최
7월 30일 ‘8.15범민족대회 제 3차 임시집행위원회’
‘8.15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 남측준비위원회와 해외동포대표단이 제3차 예비회담을 8월6일 평양에서 갖자고 한 것 수용 발표

8월 3일 「전민련」,「전대협」등 66개 재야단체, 고려대에서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결성대회(공동본부장 : 이창복.송갑석.윤영규 등 15명)’ 개최
8월 4일 「전대협」 한라산 선봉대 27명,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통일염원제’ 거행
8월 6일 ‘8.15범민족대회 준비를 위한 제 3차 예비회담’ 개회(평양) 
① 대회 목적 :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에 기초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
② 명칭 :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③ 주제 :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④ 일시, 장소 :1990년 8월15일 판문점
⑤ 참가규모 : 남,북,해외 각 지역별 20~50명 정도
⑥ 참가자격 : 각계각층을 포함하되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을 위해 헌신해 온 단체 및 개인
⑦ 채택 예정 문건 : 결의문, 호소문, 남북 당국.미국.유엔에 보내는 편지 등
⑧ 대회 운영 절차 : 공동의장단(북.남.해외 각1명), 운영위원회(북.남.해외 각 3명), 문건작성위원회(북.남.해외 각2명)
⑨ 관련행사 : 연구토론회, 문학의 밤, 체육행사, 궐기대회 등
8월 8일 백기완(전민련 고문), 김일성 주석과의 ‘남북정치협상회의’제안[기자회견]
8월 10일 '8.15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윤기복)', 남측추진본부에 학술토론회 및 문화행사의 서울,평양 공동개최와 관련된 문제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을 11일 갖자고 제의
8월 11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서총련 서부지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3개 단체, 판문점에서 가지려던 북측과의 실무회담이 경찰저지로 좌절
8월 13일 북, 1천여 명의 국내외 대표(미국, 캐나다, 일본 등 각 지역에서 온 범민족대회 해외대표 4백여 명, 북측대표 6백명)가 참석한 가운데 백두산 정상에서 ‘조국통일대행진 발대식’ 거행
8월 13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개막식 거행
8월 14일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전대협 제 1기 학추위', <통일선언>발표
북의 ‘8.15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사회민주당」.「조선학생위원회」.「천주교인협회」 등 4개 단체 명의의 연합성명 발표
8월 15일 판문점 북측지역, ‘8.15범민족대회’개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결의문> 발표 
범민족대회를 판문점에서 개최키로 하여 연세대학교에 모인 대표단이 관광버스 10대에 분승,정문을 나오다 경찰 저지로 무산됨. 황석영씨가 남측을 대표하여 범민족회의에 참가. 판문점에 모인 범민족대회 참가자들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을 추진하기로 결의
8월 19일 북 ‘범민족대회 공동운영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약칭 : 범민련)결성키로 결정,발표
① 공동의장단 : 10명(남, 북 각10명, 해외동포 대표6명)
② 중앙위원회 : 90명(남, 북, 해외 각 30명)
③ 상임집행위원회 : 40명(남, 북 각10명, 해외동포 대표 20명)
④ 사무국 본부 : 베를린
⑤ 사무총장 : 임민식(범민족대회 해외추진 본부 사무총장)
⑥ 대변인 : 황석영

9월 3일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위한 남북공동응원단 구성 제의
9월 12일 8.15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장, 남측추진본부의 남북공동응원단 구성 제의에 동의하면서 15일 판문점에서 쌍방 3명씩 대표자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
9월 14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제3차 대표자회의를 열어 지난 범민족대회를 평가하고 그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대회 결정에 따라 ‘범민족통일운동체’ 건설에 대하여 토의. 회의에서는 운동체의 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하자는 제1안(제안자 : 추진본부 공동본부장 전창일)과 ‘조국통일범민족협의회’로 하자는 제2안(제안자 : 집행위원장 이해학), 그리고 ‘조국통일범민족회의’로 하자는 제3안(제안자 : 사무처장 조성우)간에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 다수대표가 제1안에 찬성하였으나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검토 소위원회’를 구성함
9월 15일 8.15범민족대회 결의에 기초하여 유럽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지역본부」를 결성. 의장에 정규명 박사 취임
9월 15일 백기완, ‘남북정치협상 추진위원회’(가칭)발족 제안서 발표
9월 17일 「전대협」, 북의 「조선학생위원회」에 9월26일 판문점에서 남북학생교류를 위한 일정, 방법 등의 논의를 위해 학생회담 갖자고 제의

10월 7일 일본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일본지역본부」결성. 의장에 양동민 취임
10월 24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제4차 대표자회의’ 개최.
회의에서는 범민족적 통일운동체 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의장단은 남,북,해외 각 6명씩 선출되는 공동의장단으로 구성키로 결정함. 이상과 같은 결의를 기초로 범민족연합 결성을 위한 3자 실무회담 개최를 북과 해외 추진본부에 제안키로 함.
10월 31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범민족적 통일운동체 결성논의를 위해 남,북,해외동포 대표단 각 6명으로 구성되는 3자회담을 11월12일 판문점에서 갖자고 제의

11월 8일 국토통일원, 추진본부가 제출한 북한 주민접촉 신고와 3자회담 협력 요청에 불허 통보
11월 9일 조용술 추진본부 공동의장, 이해학 집행위원장 유럽으로 출국(조성우 사무처장은 유엔분리가입 반대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미 10월에 미국에 나가 있었음)
11월 12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기자회견을 갖고 베를린에서 남, 북, 해외 제3자 실무회담을 가질 것임을 공표 
11월 15일 정부,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대표의 이북 주민 접촉 불허
11월 17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제5차 대표자회의’, 조용술, 이해학, 조성우 3인을 실무회담 대표로 공식 인준하고 베를린회담을 적극 지지, 지원할 것을 결의
11월 19~20일 베를린에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 통일기구 결성 3자 실무회담’개최.
범민족적통일운동체 결성을 합의하고 그 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으로 하기로 함. 각 지역본부를 91년 1월까지 결성하기로 하고 91년 2월에 각 지역에서 선출된 의장, 부의장들이 모여서 의장단회의를 갖기로 함. <공동선언문>, <실무회담합의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등을 채택
11월 21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미주본부」결성
11월 29일 남측 실무회담 대표3인, 동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7천만 동포에게 드리는 글>발표.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는 베를린회담 대표단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 철회요구 성명서 채택
11월 30일 남측 실무회담 대표들 귀국. 공항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요원들에 의해 연행 구속됨. 연세대 상경대 강당에서 ‘3자 실무회담 대표단 환영 및 보고대회’ 가짐. 베를린 3자회담 지지성명 발표(「국민연합」, 「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평화민주당」,「민주당」,「민중당」,「범민련 유럽본부」,「범민련 일본본부」등)

12월 1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미주본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
12월 14일 ‘8.15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제6차 대표자회의’에서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결성을 결의하고 조직소위원회를 구성함(위원 : 이창복, 김희택, 박순경, 전창일, 권형택)
12월 16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결성. 의장에 재독 작곡가 윤이상 선생 취임
[ 범민족대회 ]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1차 범민족대회는 88년 제기되어 3년만인 90년도에 열린 대회로서, 반통일세력의 집요하고 교활한 방해책동으로 인한 거듭된 난관을 뚫고 자주의 시대 90년의 첫해에 조국통일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하였다. 

88년 여름, 애국청년학생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는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를 외치며 한반도의 통일의 열기를 몰아넣었으며. 이러한 청년학생들의 통일투쟁은 7천만겨레의 통일 의지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8월 1일 남측 각계사 1,014 명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취지문>을 통해 북과 해외의 온 민족성원이 참여하는 범민족대회를 열어 민족의 통일방안과 통일실천과제를 논의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세계대회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협하고 저해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세계평화운동세력과 함께 확인하였다. 


이에 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은 결성대회에서 범민족대회사업을 추진할 것을 결의하고 나섰으나 미국과 노태우정권에 의해 저지당하고 간부들은 대거 체포 구속되게 된다. 

그러나 3월 11일 범민족대회 유럽지역추진본부, 18일 북미주지역 추진본부, 30일 일본지역추진본부가 결성되는 등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려는 동포들의 들불 같은 통일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에 고무되어 전민련은 90년 3월 2기 대의원대회에서 8월 15일 범민족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고 이후 미국과 노태우정권의 악랄한 방해책동은 계속되었으나 범민족대회 주체의 결속력은 강화되었으며 반통일세력은 그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게 되었다. 

7월 27일 평화군축을 위한 국민걷기대회에 이어 8월 3일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족식, 13일 범민족대회 학술제, 14일 범민족대회 통일문화제, 15일 판문점에서의 범민족회의로 이어진 1차 범민족대회는 12개 지역, 66개 부문, 연인원 20여만명이 참가하였다.


1차 대회는 비록 남측추진본부가 미국과 노태우 정권의 봉쇄로 인해 북, 해외동포와 판문점에 마주 앉지는 못했으나 서로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확인하고 통일문제에 관련된 기본입장을 거의 일치시켜 내었다. 특히 대회의 성과를 기초로 남, 북, 해외를 망라하는 거족적 민간급 통일운동 연합체인 범민련을 탄생시킴으로써 1차 범민족대회는 90년대 통일운동에 획기적 진전을 열어낸 역사적 대회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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