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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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일지 ]

1월 23일 ‘범민련 제6차 공동의장단회의’ 개최(베이징), 올해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공동합의문> 채택 


2월 18일 북, ‘정당 사회단체 연합회의’ 개최, 국가보안법 폐지, 안기부 해체, 군사훈련 중지 등 주장, ‘동족 사이에 서로 합작하고 단결’하기 위해 ‘남조선 정당단체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와도 대화와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힘


3월 14일 강희남, 전창일, 진관, 김병권 선생 특사 출소 


4월 20일 북측은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50돌을 기념하는 중앙연구 토론회를 당정고위간부 참석하에 개최하고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함 


6월 6일 「범민련 남측본부」, ‘제9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대회장 강희남)’구성 

6월 8일 북, ‘통일을 희망하는 남북 및 해외단체, 인사들과의 접촉과 왕래,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민족화해협의회(회장 김영호 사회민주당 부위원장)」를 결성

6월 10일 북, 평양에서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회의’를 열고 오는 8월 15일 판문점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을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편지를 채택하고, ‘통일대축전 준비위’를 구성. 「민족화해협의회」회장인 사회민주당 김영호 부위원장을 준비위원장으로 선출 

6월 15일 북측적십자사 이성호 위원장 명의로 판문점에서 적십자 연락관을 통해 통일대축전 제안 서신을 남측의 여야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 개별이사 85명 앞으로 보냄. 

6월 16일 「범민련 해외본부」, 「범민련 남측본부」 앞으로 “통일대축전은 각계각층을 통일의 대열에 불러일으키려는 뜻에서 제안된 것으로 제9차 범민족대회는 통일대축전의 틀 내에서 개최될 것이며 통일대축전이 무산되면 제9차 범민족대회를 성대히 개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제안을 보내옴 

6월 18일 「범민련 북측본부」, ‘제9차 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위원장 백인준)’를 구성하고 남측과 해외의 범민련 조직과 연대하여 범민족대회 추진을 결의. ‘통일대축전 준비위원회 1차회의’를 개최[언론보도]

김대중 대통령, 종교인과의 조찬모임에서 ‘8.15통일대축전’ 수용방침을 시사 

6월 19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북측의 통일대축전 제안을 수용할 의사를 밝히면서, 이적단체(「한총련」, 「범민련」) 참여는 불용할 뜻을 표명. 

6월 22일 강인덕 통일부장관, ‘대북제의문’을 북측의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김용순위원장 앞으로 보내면서 7월 2일 북측 판문각에서 남북 각기 3인의 실무대표가 참여하는 실무회담 제안 

남측정부의 「한총련」, 「범민련」 등 이른바 ‘이적단체 축전 참여 불용 방침’에 대해 북측 비난보도 

6월 23일 ‘98민족대회와 8.15통일대축전에 대한 민간단체 공동대응을 위한 각계인사 간담회’개최.  ① ‘8.15통일대축전’을 민간단체들의 폭넒은 참여를 통해 추진 ② ‘8.15통일대축전’의 추진을 위해 6월 26일 오전 10시 카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제단체 대표자회의’를 소집 ③ 제단체 대표자회의 실무준비를 「전국연합」, 「민족회의」, 「경실련 통일협회」, 「통일맞이」에 일임 ④ 6월 26일 대표자회의에서 ‘8.15통일대축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 4일 ‘준비위원회 발족 결의대회’를 대중적으로 개최 등의 입장을 결정 

6월 26일 ‘8.15통일대축전 민간단체 대책수립을 위한 간담회’개최(명동 카톨릭 회관 3층 강당). 80여개 단체 100여 명 참가 

① ‘통일축전 준비위’를 구성하고 준비위원장에 강만길(「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 구중서(「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김중배(「참여연대」 대표), 이우정(「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대표), 이창복(「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김상근을 선임하고 집행위원장에 조성우(「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집행위원장), 정책위원장에 이장희(「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원장)를 선임함. ②7월 4일에 ‘통일대축전 남측본부’를 구성키로 결정함. 참여자 다수가 「범민련」, 「한총련」 참가 보장에 대한 뜻을 같이 했고 「범민련 남측본부」 김양무 상임부의장의 통일대축전 남측본부 참여의사를 밝힘

「범민련 남측본부」는 향린 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8.15통일대축전’을 환영하면서 「범민련」, 「한총련」에 대한 참여 보장을 정부 당국에 촉구하는 성명서와 기자회견문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채택 

6월 29일 ‘통일축전 준비위 1차 집행위원회’를 열고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선안을 마련함 


7월 1일 ‘통일축전 준비위 2차 집행위원회’ 개최하고 추가 인선 등을 논의함 

7월 2일 ‘통일축전 준비위’ 통일부 기자들과 간담회 개최 

남측정부가 북측에 제안한 통일대축전 실무회담 무산 

「범민련 공동사무국」, ‘통일축전 준비위’가 북측이 제안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통일대축전>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통일대축전>으로 변경한 것에 대하여 유감 표시 

7월 3일 ‘통일축전 준비위 3차 집행위원회’개최하여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결성을 최종 점검 

「범민련 남측본부」, ‘범추본 대표자회의’ 개최.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에 「범민련 남측본부」의 조직적인 참여와 공동본부장과 집행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결의 / ‘통일축전 준비위’ 조성우 집행위원장의 TV인터뷰에서 「범민련」, 「한총련」 제외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체를 요구하고 「범민련」과 「한총련」이 조직적으로 참여함을 대내외에 공표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 

7월 3일 세실레스토랑에서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청년추진본부 구성을 위한 간담회’ 개최 

7월 4일 프레스 센터 20층, ‘8.15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대표자회의’ 개최. 단체대표 50여 명 참석, 참관 50여 명 참여 

- 제1안건> 규약 제정의 건에서 단체와 개인 모두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는 규약안을 일괄 승인

- 제2안건> 인선의 건에서 상임공동대표에 강만길, 구중서, 김상근, 김중배, 서영훈, 이세중, 이우정, 이창복, 한완상 이상 9인으로 하고 집행위원장에 조성우, 정책위원장에 이장희, 감사 최영도, 이효재 대변인 박원순, 손석춘(부대변인)으로 주요 간부 인선

「범민련 남측본부」는 단체의 조직적 참가가 보장되는 않는 조건에서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참여를 유보하는 방침을 표명하고 추진본부에서 상임 공동의장의 한 사람으로 추천된 강희남의장의 추천 유보 방침을 밝힘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민족화해, 평화, 통일을 위한 대축전 남측 추진본부’결성 

7월 6일 통일부 주관으로 여야정당(국민회의, 한나라당, 자민련, 국민신당)과 「민족통일중협의회」,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이산가족교류협의회」, 「한국예총」, 「민족예술인총연합」,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협의회」,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대한 체육회」 등12개 정당 사회단체가 참여하여 간담회 개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구성을 논의했으나 구성방식과 주도단체, 성격을 둘러싸고 이견이 발생함 / ‘8.15통일대축전’ 추진에 대해 논의했으나 7월 4일 발족한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와의 관계문제로 이견이 발생함 / 7월 10일 2차 간담회 갖기로 함. 

통일대축전 북측준비위는 중앙방송을 통해 「범민련 남측본부」 축전준비위가 제안한 7월 중순 실무회담에 대해 수용 방침을 밝힘(「범민련 남측본부」 축전준비위는 7월 15일 회의에서 공식 인준됨)

7월 8일 ‘남측 추진본부 제1차 상임운영위원회’ 개최(방송대 총장실). 강만길, 구중서, 김상근, 이창복, 한완상, 이장희, 조성우 참석, 김거성, 도천수 배석

「민평협」 결성 취지에 동감하나 ‘8.15통일대축전’의 준비 주체는 ‘남측추진본부’가 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인내를 갖고 정부와 협의키로 하며, 10일 예정된 통일부 초청 간담회에 조성우(「민족회의」), 이장희(「경실련」), 김용태(「민예총」) 3인은 ‘남측추진본부’ 입장을 대변할 것을 요구하고 집행위원 인선안을 논의함

7월 8일 ‘통일대축전 청년추진본부 1차회의’

7월 10일 통일부 주관으로 4개 정당과 8개 단체의 2차 간담회를 개최함. 

① 참석자들은 민간통일운동의 구심체로서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 ② 협의회의 명칭, 구성 방법, 8.15행사준비 등 개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함 ③ 소위원회는 설훈(국민회의 기조실장), 이장희(「경실련 통일협회」), 이병훈(「이산가족교류협의회」), 조성우(「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서경석(「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송영대(「민족통일중앙협의회」) 6인으로 구성 ④ 3차 간담회는 16일 12시에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소위원회의 합의 사항을 보고 받고 협의키로 함. 

7월 10일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제2차 상임운영위원회’ 개최(YMCA 자원방). 통일부 주선 2차 간담회 이후 대응방안 마련 논의. 

① 원칙적인 참여 입장과 6인 실무소위 구성결정을 추인하고, 소위에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측 입장을 (가칭)‘민족화해 명화통일협의회'(민평협)’으로 제안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이장희 정책위원장과 조성우 집행위원장의 책임하에 작성하여 임하기로 함(이후 명칭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 민화협)’으로 결정됨) ② ‘통일대축전 추진본부’와 ‘민평협’의 관계는 이미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별개의 단체이며, ‘통일대축전 추진본부’는 ‘8.15통일대축전’의 추진 주체로서의 자기위상을 분명히 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음을 재차 확인함. ③ 남북이 함께 하는 명실상부한 통일대축전이 되기 위해서는 「범민련」, 「한총련」 문제를 대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확인하면서 행사를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자세로 축전추진본부가 앞장서서 정부, 「범민련 남측본부」 등과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함

7월 11일 ‘통일협력체 논의를 위한 사회단체 정당 1차 소위원회’ 개최(코리아나호텔)

① 명칭 : ‘민족화해 범국민협의회’(약칭 : 민화협)

② 목표 : 통일문제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실현, 그리고 교류 협력을 통해 회복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7월 13일 ‘청년추진본부 2차 회의’ 개최 

7월 14일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제2차 집행위원회’ 개최(YMCA). 통일부 주선 3차 간담회 관련대책 마련 논의.  

① 6인 실무소위에서 「민화협」 추진속도를 늦추면서 「민화협 준비위」를 우선 결성하기로 하였다는 사실과 「민화협 준비위」 참여단체를 우선 49단체로 안을 마련했다는 보고를 받고 준비위 참가단체 선정원칙과 안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제 의견이 모아져 이장희 정책위원장이 이를 수렴하여 다음 소위에서 제기하기로 함 ② 「민화협 준비위」와 관련한 논의와 참여는 추진본부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그 성과를 기반으로 한다는 원칙하에 「민화협」 논의를 병행하여 추진할 수 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봄 ③ 축전 추진주체, 실무회담 제의 주체는 「민화협」이 아닌 ‘남측추진본부’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민화협의 추진일정과 무관하게 ‘남측추진본부’는 지역별, 부문별 추진본부의 결성과 사업 계획의 구체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축전 추진준비를 차분히 진행해 나가기로 함 ④ ‘남측추진본부’가 북측추진본부에 실무회담을 제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범민련」, 「한총련」의 참여문제, 「민화협」과 ‘남측추진본부’와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의 해결직후 북측에 실무회담을 제의할 수 입도록 정책위에서 실무회담을 준비하기로 함

7월 15일 「범민련 남측본부」는 의장단회의를 개최하고 7월 6일 북과 해외에 제안한 통일대축전 관련 실무회담을 보고하고 범민련이 중심이 된 통일대축전 준비위 구성을 공식화 함.

7월 16일 통일대축전 85인 초청자 간담회 모임 가짐(김상현, 이부영 등 40여 명참가)

‘남측추진본부’ 제3차 상임운영위원회(YMCA자원방)

① 「민화협」 준비 6인소위 논의 내용에 대해 준비위 참가 단체로 10개 단체(총59개 단체)를 더 확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준비위에 5인 공동위원(여, 야, 시민, 보수, 진보)을 두기로 했다는 사실, 7월 17일 4차 소위를 갖기로 했다는 사실 등을 보고함

② ‘남측추진본부’ 상임공동본부장에 박순경, 청화를 선임하고 서영훈은 본인의 고사로 제외함. 

③ 「민화협」과 관련하여 5인 공동준비위원장 중 여당쪽 인사로 수석대표를 두자는 요구는 대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추진본부를 「민화협」 산하에 재구성하자는 요구 역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문제이며 현재의 추진본부를 확대 개편하는 방향으로 폭을 넓혀 축전의 실제적인 준비와 실무회담을 추진본부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함.

7월 16일 통일대축전 서울추진본부 2차 간담회(향린교회)

7월 20일 ‘범추본’ 중앙집행위원회 

7월 21일 「범민련」, 통일대축전 3자 실무회담(베이징). 통일대축전 북측 준비위와 해외준비위,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대축전준비위가 3자 실무회담을 갖고 8.15통일대축전의 기조와 행사를 확정하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를 「범민련 남측본부」 중심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함.

• 주요 내용

① 대회 명칭 :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통일대축전)

② 일정과 장소 : 8월 14일과 15일, 판문점에서 거행한다.

③ 주제 :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

④ 기조 : 민족자주와 애국애족의 원칙, 민족적 화해와 단합, 남북관계 개선, 온민족의 접촉과 대화, 연대 화합, 연방통일조국 건설

⑤ 축전행사 내용 :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연석회의, 민족통일예술축전, 사진미술전시회, 남북해외통일한마당, 이밖에 남북해외에서 지역행사를 한다. 

7월 22일 「전국연합」,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5인)회동. 「범민련」행사 참여 요청이 있었고 이에 「전국연합」은 조직참여의 어려움을 밝히고 탄압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힘.

7월 23일 ‘청년추진본부’ 제1차 운영위원회.

「전국연합」,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단 회동,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에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이 단체가입이 되도록 「전국연합」이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우선 개인 자격으로 「범민련 남측본부」가 ‘남측추진본부’에 가입하기로 의견을 모음.

7월 24일 「범민련 남측본부」, 7월 21일 실무회담 결과를 공표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연기함. 기자회견에 앞서 가진 의장단회의에서 「전국연합」과 나눈 의견을 논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음.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통일축전 긴급대토론회' 개최(주제 : 8.15통일대축전과 민간통일이 나아갈 길)

7월 26일 북측은 방송을 통해 7.21합의문에 입각하여 통일대축전을 추진하자고 주장함.

7월 27일 「범민련 남측본부」는 7.21합의문을 통신을 통해 공개하고 7월 30일 범민련 중심의 통일대축전 남측 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간담회를 가질 것을 제안함

7월 28일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상임운영위원회「범민련 남측본부」와 북측의 통일대축전 준비위가 실무회담을 한 것에 대해 유감 표시

7월 30일 「범민련 남측본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 남측준비위원회 조직 강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가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의 조직 참여를 보장하고 ‘7.21합의’를 수용할 경우 대등한 조직 대 조직으로 통합할 수 있음을 확인.

7월 30일 청년추진본부 제2차 운영위원회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범민련 남측본부」)’앞으로 8.15에 즈음하여 14인(강희남, 이종린, 전창일, 김병균, 리영희, 신창균, 김상근, 홍근수, 이창복 등) 앞으로 방북 초청장과 신변보장서(7월 26일로 명기) 보내 옴.

7월 31일 통일부 주관 12개 정당사회단체 3차 간담회 개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를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6인의 공동대표(여, 야, 여성, 시민, 보수, 진보)를 두기로 함. 8월 5일 10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갖기로 하고 오는 8월 15일 55개 정당과 단체의 참여로 정식 구성하기로 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를 구성(8월 15일)하면서,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정당과 보수단체가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에 가입하여 대축전을 추진키로 합의하고 이를 위해 「민화협」 산하에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를 두기로 함.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기자회견. 8월 7일 오전 10시 판문점 실무회담 제안. 의제로는 ‘통일대축전의 기조와 명칭’,  ‘민족대토론회, 8.15해방 53주년과 남북합의서 실천을 위한 범민족단합대회, 민족통일예술대축전 등의 행사준비와 관련한 문제’를 제안함. 

7월 31일 「서총련」 통일축전(고려대). 700여 명 참석

    ~8월 1일


8월 3일 ‘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범민련 남측본부」)’는 8월 5일 예정된 2차 통일대축전 실무회담 겸 제9차 범민족대회 실무회담 준비함.

8월 4일 4개 단체(「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민주노총」, 「전국연합」)회동 (이후 두 차례의 회동을 가짐). 최근 전개되고 있는 탄압에 대한 대응과 8.15대회에 대해 공동대응과 투쟁 등에 대해 논의 하고, 8월 9일(일) 오후 6시 명동성당에서 ‘공안탄압 분쇄 집회’ 개최키로 합의. 

통일대축전 북측준비위원회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대표가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5일이나 7일 베이징에서 실무회담을 열자고 평양방송을 통해 수정 제의

8월 5일 서울 추진본부 대표자회의

제2차 통일대축전 준비위 제9차 범민족대회 3자 실무회담(베이징). 통일대축전 남북해외 실무위원회(남북해외 각 3인씩 총 9인) 구성과 행사 식순, 도안 등 확정.

8월 7일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가 북측에 제안한 실무회담 무산

8월 8일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북측에 재차 실무회담 제안.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김상근 목사를 단장으로 하는 실무회담 대표를 구성하고 8월 11일에 판문점에서 실무 회담을 가질 것을 재차 제안.

이날 발표된 실무회담 대표 중에 「범민련 남측본부」 김양무 상임부의장이 포함되었으나 「범민련 남측본부」와의 조직적 합의 없이 포함된 것으로, 「범민련 남측본부」가 참여하는 실무회담 구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음.

8월 11일 「전국연합」 상임집행위원회. ‘통일대축전’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민주노총」과 공동으로 8월 15일 오후 4시 장충단 공원에서 ‘남북합의서 이행과 군화군축 실현을 위한 민족자주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가 제안한 실무회담 무산.

「민화협 준비위」는 북측이 실무회담을 거부함에 따라 ‘통일대축전’의 공동 개최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8.15를 기해 남측만의 행사를 개최하기로 함.

8월 12일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을 중심으로 하는 1,700여 명이 제9차 범민족대회와 제8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개최를 위해 서울대로 집결

8월 13일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과 제19차 범민족대회 개최(서울대). 4000여 명 참가 

통일대축전과 제19차 범민족대회 개막식, 범청학련 통일노래한마당 개최

8월 14일 ‘98범민족회의’, ‘통일대축전 남북해외연석회의’, ‘98범청학련 총회’ 개최

부문지역 결의대회, 통일대축전과 제9차 범민족대회 전야제 개최

8월 15일 통일대축전과 제9차 범민족대회 보고대회. 이후 판문점 진격투쟁(판문점 진격투쟁참가자 200여 명 연행, 지도부 10여 명 연행되어 4명 구속) 

같은 시각 판문점 북측지역인 판문각에서 남측의 「한총련」 대표 2명(황선, 김대원)과 문규현 신부가 참여한 가운데 통일대축전과 제9차 범민족대회 개최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남측추진본부)」, ‘8.15통일대축전 판문점 대회’ 진행

「전국연합」과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한마당'(「민주노총」)과 ‘남북합의서 이행과 평화군축 실현을 위한 98자주통일 결의대회’를 개최(장충단 공원)

8월 17일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 압수 수색 당함

김양무 상임부의장 구속, 최진수 사무처장 구속(실형 4년 6개월 선고) 


9월 3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 민화협)」결성

[ 공동의장단 회의 ]

6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1998년 1월23일, 중국 베이징)   


- 올해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 투쟁할 것

-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 50돌이 되는 뜻깊은 해에 민족대단결의 획기적인 전환적 계기 마련

-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고 안기부를 해체하기 위한 투쟁

- 조국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강령, 연방제통일방안을 계속 견결히 고수, 관철할 것

- 범민련 조직을 강화하고 범민련 운동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


[ 범민족대회 ]

1998년 9차 범민족대회 


범민련은 날로 높아가는 7천만 겨레의 통일열기를 모아내고 90년대 연방통일조국건설의 전 민족적 의지를 주동적으로 실현해 나가는데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범민련 공동의장단 회의를 예년보다 앞당겨 1월 22-23일 중국 북경에서 개최해 올해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범민련 두리에 굳게 뭉쳐 90년대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을 7천만 겨레에게 호소하였다. 


이북에 대해서는 군사적 압박과 경제봉쇄를 이남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운 경제신탁통치와 내정간섭으로 조국반도 전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미국과 김대중 정권의 광폭한 탄압, 개량화 술책에도 7천만 겨레는 전 민족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원칙을 견결히 틀어쥐고 나감으로써 9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 성사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에 통일애국민중은 6월 6일 김대중 정권의 원천봉쇄를 뚫고 <9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결성식>을 성사시켜내었으며 곧이어 지역추진본부결성식, 지역총련 통일축전, 국가보안법 철폐서명운동 등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남북연석회의 50주년을 맞이하여 4.18 <남북연석회의 5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남북연석회의의 역사적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 재산의 유무, 지역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실현하는 길에 온 민족이 떨쳐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이북이 남북연석회의 50주년을 맞이하여 제안한 <통일대축전>을 적극 환영하여 성사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에 김대중 정권은 민간의 자주적인 통일행사인 <통일대축전>에 범민련과 한총련을 배제한다고 함으로써 <통일대축전>을 파탄 내려하였다.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민간통일운동 와해, 분열책동은 '민화협' 결성으로 극에 달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이제까지 반공, 반북에 앞장서 왔던 관변단체들을 모아 '민화협'이라는 관변어용기구를 결성하여 민간통일운동을 분열 와해시키고 통일대축전을 파탄 내려고 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범민련 남측본부와 통일애국민중은 <통일대축전>남측준비 위원회를 결성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통일대축전> 성사의 전 민족적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나섰다. 

기어이 통일애국민중은 8월 12일 험난한 관악산 산줄기를 타고 서울대에 입성함으로써 민족적 대단함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5천여명의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속에서 진행된 9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 전야제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민족의 통일열기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8월 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을 성사시켜내려는 통일애국민중의 판문점 진격투쟁을 헬기와 물대포, 최루탄 속에서도 한치의 동요도 없이 7천만 겨레의 조국통일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통일선봉대의 임진각 진출투쟁, 연신내에서 판문점 진격투쟁, 한총련 김대원, 황선대표의 방북투쟁, 문규현 신부의 축전 참가는 제 9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을 명실공히 남과 북 해외 3자 연대의 장으로 빛내이고 통일애국민중에게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에 대한 신심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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