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본문

[ 투쟁일지 ]

1월 4일 「범민련 남측본부」, 전쟁책동 관련 규탄성명 발표 및 시국선언운동 시작

1월 13일 <클린턴에 공개서한> 발표, <김대중 정권의 친미친일 행각> 발표, <어업협정 국회비준규탄 성명>발표

1월 14일 「범민련 남측본부」, <99년 범민족대회, 통일대축전 평가서> 발표


2월 3일 북측, 정당·단체 연합회의를 열고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전쟁의 위험을 막고 역사의 분기점인 올해에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마련하자"는 요지의 편지 발송

2월 7일 「전국연합」 8기 정기 대의원대회, "(가칭)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대축전과 10차 범민족대회 성사를 위해 노력한다"는 8월 대회 방침을 채택.

2월 8일 「범민련 남측본부」, 북의 남북고위급회담 제안에 대한 성명

2월 19일 「범민련 남측본부」 소식지 [민족의 진로] 6호를 시작으로 15호까지 제작 배포

2월 24일 「범민련 남측본부」 창립 4주년 기념대회, 한양대

2월 27일 ‘미국의 한반도 전쟁반대와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시국대토론회’ 및 통일문예공연

‘반미반전 비상대책위원회’ 발족식


3월 1일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 반대와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 분쇄, 국가보안법 완전 철폐를 위한 3.1절 반외세 민족자주 정신계승 민족대회’ 개최 

3월 4일 「범민련 남측본부」 기관지 ‘조국의 하나다’ 창간

3월 초 범민련 신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발행

3월 27일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김영대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홍근수 의장에게 6월 1일 중국 용정에서 남과 북 해외가 함께하는 ‘문익환 목사 회고모임’제안[서한]

3월 28~29일 제7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 진행(중국 베이징) "제10차 범민족대회를 해내외의 통일운동단체들과 애국인사들이 광범위 참가하는 범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성대히 개최할 것이다"라고 결의[공동의장단회의 결의문]


4월 13일 「범민련 남측본부」 제4기 정기중앙위원회 총회 개최(대구 영남대학교). 중앙위원회 총회를 통해 99년 사업전망, 예산안, 인선안 확정. <지하철 총파업지지 및 노동자 지지성명>, <통일애국단체에 드리는 단결투쟁호소문>, <RSOI 전쟁훈련 반대 특별결의문> 발표

4월 14일 「전국연합」 홍근수 공동의장 외 3인, 통일부에 ‘문익환 목사 회고모임’ 관련 북한주민접촉 신청.

4월 29일 통일부장관, 「전국연합」의 신청 불허 통지 


5월 1일 ‘북한주민접촉신청 불허규탄 및 민간교류 전면보장을 위한 규탄대회’ 개최. 통일부에 <항의서한> 접수

5월 7일 「민족화해자주통일운동협의회(약칭: 자통협)」 결성식. 남, 북, 해외에 '민족의 화해와 대단결, 평화와 통일을 위한 99대축전'을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함.  

5월 9일 <통일애국세력의 통일단결과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결성에 대한 「범민련 남측본부」 입장> 발표

5월 9일 「범민련 남측본부」, 5.18 19주년을 맞아 각계 단체에 드리는 투쟁제안서 발표

5월 16일 ‘5.18투쟁주간 선포식 및 민족자주권,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민중대회’ 개최(민권공대위 주최/ 서울역) 

5월 17일 ‘5.18 반미반독재조국통일항쟁 정신계승 전야제’(명동성당) 

‘5.18항쟁정신 계승과 민족자주와 민중기본권 실현을 위한 민중대동제’개최 

5월 18일 ‘5.18반미반독재조국통일항쟁정신 계승 대회’ 및 ‘미국의 전쟁책동 강제침탈 분쇄와 정리해고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민족대회’ 개최 

5월 19일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단회의, 올해의 통일대축전과 제10차 범민족대회를 대회 사상 가장 빛나는 범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되게 하며, 모든 통일애국단차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광범위한 참가를 위해 8.15대회명칭을 [민족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10차 범민족대회 ․ 99통일대축전]으로 할 것을 결정

5월 22일 민권공대위, 반미의 날 ‘경제침탈, 전쟁책동, 내정간섭 미국반대, 민족자주권 쟁취를 위한 민족대회’ 개최

5월 17일 「자통협」 집행위원회, “통일대축전과 10차 범민족대회는 한 날, 한 장소에서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입장 정리

5월 19일 「전국연합」 중앙상임위원회, “각계각층 대중들의 광범위한 결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통일대축전 추진본부 건설에 나선다”, “「전국연합」은 10차 범민족대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한다”고 결정

5월 20일 문익환 목사 추도 모임 참가를 위한 「통일맞이」, 「전국연합」 공동명의로 13명이 2차 북한주민접촉신청

5월 25일 북측대표단 중국 연길 도착

5월 28일 통일부장관 명의의 불허통지

5월 31일 ‘늦봄 문익환목사 회고 모임’ 개최(용정)

   ~6월 1일 남측대표단(김규철 「민자통」 상임의장, 박세길 「전국연합」 정책위원장, 이용규 「인천연합」 공동의장, 김지은 고려대 학생)

북측대표단(김령성 「민족화해협의회」 중앙위원, 이충복 「민족화해협의회」 중앙위원, 강련학 「민족화해협의회」 부의장, 이경철 「범청학련 북측본부」)

해외대표단(이행우 「자주연합」의장, 정기열 「자주연합」자통위원장, 최관호 「자주연합」조직위원장, 전호언 「재일본조선인 평통협」 부의장, 최철교 「범민련 해외본부」부의장, 문태란 「재중조선인 청년연합회」 위원장(문익환목사 6촌 동생), 장영동 「재중조선인총연합회」의장, 문영환(문익환목사 동생) ,강원진 캐나다 대표)


6월 5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 해외추진본부’ 결성

6월 10일 <‘문익환 목사 추모 중국용정행사’ 「전국연합」 대표단 구속에 대한 성명> 발표

6월 13일 ‘국가보안법 철폐와 「범민련」·「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민간통일운동 보장,  민중탄압 분쇄를 위한 통일애국단체 시국토론회’ 개최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 10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출범식 및 통일한마당 진행(서울 홍익대학교)

6월 18일 서초동 서울지법 319호, 「범민련 남측본부」 지도부 재판투쟁 진행

6월 18일 <이른바 '서해사건'에 대한 남측본부 시국성명>과 <김대중 정권에 보내는 공개서한> 발표

6월 24일 ‘범추본’과 「자통협」의 대표간 만남을 가짐. 「자통협」이 대회 명칭을 ‘99 통일대축전 ․ 10차 범민족대회’에서 ‘10차 범민족대회’를 별도로 조정하여 대회를 치르자고 제안하였으나 합의되지 못함.


7월 1일 북측,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 10차 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약칭 : 범민족통일대축전 북측준비위원회)’출범.

7월 4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 10차 범민족대회(약칭 : 범민족통일대축전)남북해외 공동준비위원회’ 결성

‘7.4남북공동성명 발표 27돌 기념 및 한반도 전쟁책동 분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 북, 해외 공동대회’ 진행(서울, 평양, 도쿄).「범민련 남측본부」 사상 처음으로 임진각에서 집회를 열고 투쟁함.

7월 5일 ‘통일대축전 추진본부(약칭 : 통추본)’, 통일대축전 성사를 위한 실무회담을 갖자고 북과 해외에 제안[기자회견](기자회견 직전에 '범추본'과 ‘통추본’은 공동으로 통일대축전을 북과 해외에 제안하기 위한 협상을 가졌으나 결렬됨)

7월 18일 ‘범민족통일대축전 북측준비위원회’는 「자통협」에 “범민족통일대축전이 아닌 다른 축전을 위한 실무회담을 하는 것이 통일운동 대열의 단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됩니다. 이런 우려로부터 우리는 우선 귀 협의회가 범민족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와 잘 협의하여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답변을 보냄[‘99통일대축전 실무회담’제안에 대한 회신]

7월 21일 ‘통추본’, ‘범추본(남)’ 대표와 회동하여 범민족통일대축전 명의로 하나의 대회를 치르자고 제안함.  

7월 23일 ‘통추본’ 상임운영위원회를 열고 ‘통추본’의 명칭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범민족통일대축전 추진위원회(통추위)'로 전환하기로 결정.

7월 23일 서울지방법원 319호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단 6차 공판투쟁 진행

7월 24일 '국가보안법 철폐와 비전향장기수 송환, 양심수 전원석방, 정치수배해제 민족대회‘ 진행(명동성당), 300여 명 참가 

7월 26일 ‘통추위’, 8월 대회 명칭을 ‘범민족통일대축전’으로 하고 ‘통추위’와 ‘범추본’ 등 남측의 모든 통일세력이 공동으로 ‘범민족통일대축전 남측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8월 대회를 하나의 대회로 치르자는 제안문을 ‘범추본’에 전달.

7월 27일 ‘범추본’ 대표(‘범추본’ 이현수 재정위원장, 김양무 본부장)와 ‘통추위’ 대표(노수희 「전국연합」 의장, 이규재 「민주노총」 통일위원장)가 8월 대회를 ‘범민족통일대축전(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이라는 명칭으로 합의함. 

7월 27일 ‘7.27 46돌 기념 남,북,해외 공동대회’ 진행(명동성당). 600여 명 참여

7월 28일 ‘통추위’와 「민주노총」은 즉각 7.27합의를 추인. ‘범추본(남) 추진본부장단회의’는 4인 대표 합의를 수용하지 않음.

7월 31일 ‘범추본’과 ‘통추위’ 회동을 가졌으나 이렇다 할 합의 보지 못함

7월~8월 8월대회 전까지 ‘통일염원 전국순회 공연’ 진행


8월 2일 통일선봉대 발족(이후 14박 15일 동안 헌신적 활동을 벌임) 

8월 3일 ‘미국과 일본, 김대중 정권의 제2의 한반도 전쟁책동 분쇄와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족대회’ 진행(서울 종묘공원)

8월 4일 ‘범추본’, ‘통추위’간 협상.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서 행사를 치르자"는 의견을 모음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민족대토론회’ 실무회담 개최(북경 유영식당)

대표단 : 북측 - 김령성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김룡수 「민족화해협의회」사무국 지도원 / 남측 - 나창순 「범민련 남측본부」 참가대표, 이성우「전국연합」 참가대표단장, 박기수「전국연합」 참가대표 / 해외 - 임민식 「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정기열 「자주연합」 자주통일위원장, 한호석 「자주연합」 정책위원장(통일학 연구소장) 

대회명칭 :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민족대토론회

주최 :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민족대토론회 남북해외 3자 공동준비위원회

주관 : 「민족화해협의회」(북),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남)

일정 : 1999.8.5(오전10시) 1일간

토론주제

· 기본주제 : 민족의 자주와 조국통일

· 토론주제 : ① 민족 자주의 문제 ② 민족의 화해와 단합 문제 ③ 연방제 통일문제

8월 5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민족대토론회’ 개최 

민족대토론회에서 남·북·해외 대표들은 북의 제안으로 8월대회 명칭에 대해서 새롭게 합의하고 공동결의문 발표함. "우리는‥‥‥당면하여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10차 범민족대회' '범민족통일대축전'를 공동의 노력으로 성대히 개최할 것이다" 라고 결의

민족대토론회 남북해외 참가자(남측-나창순 「범민련 남측본부」 참가 대표,  이성우「전국연합」 참가대표단장, 박기수「전국연합」 참가대표, 박기철「전국연합」 참가대표, 이상훈 전국연합」 참가대표, 한동근「전국연합」참가대표, 윤용배 「전국연합」참가대표, 김상용「전국연합」참관단, 문희태「전국연합」참관단, 강형구「전국연합」 취재단장 / 북측 - 김령성「민족화해협의회」부회장,  김룡수 「민족화해협의회」 사무국 지도원, 최태건「민족화해협의회」사무국 지도원, 원동련「민족화해협의회」사무국 지도원, 류명선「범민련 북측본부」중앙위원, 조성발「범민련 북측본부」중앙위원 / 해외 -임민식 「범민련」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정기열「자주연합」자주통일위원장, 한호석「자주연합」정책위원장

8월 6일 ‘범민족통일대축전 공동준비위원회 2차 회의’, 북경 민족대토론회에서 합의된 명칭을 채택함(남측의 방북대표 라창순, 서원철 참석)

「전국연합」 임시 중앙상임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10차 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 명칭을 최대한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결정.

8월 7일 ‘통추위’ 상임운영위원회는 북경 민족대토론회에서 합의된 명칭을 수용. 「범민련 남측본부」, 「전국연합」 대표 5명 오후 3시 10분 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범민련 남측본부」 나창순 고문과 서원철 청년대표, 「전국연합」 이성우(전국연합 부산연합 의장), 강형구(「전국연합」 부대변인), 박기수(전북 노동자통일대 녹두 집행위원장)대표). 범청학련 황혜로 대표(연세대 천문대기학과 4년 휴학)합류

방북대표단, ‘연방제 합의 확산, 미국의 전쟁책동 분쇄, 주한미군 철거, 북-미 평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석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7천만 민족이 대화의 광장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첫 만남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발판으로 지속적인 만남이 되도록 더욱 분기하자’는 내용의 성명 발표 

8월 10일 「민주노총」 상임집행위원회에서 8월 대회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의 명칭으로 치를 것을 결의

「전국연합」 집행위에서 "올해 통일행사는 남·북·해외 3자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범민족대회에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결정함.

8월 13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 개최

8월 16일 범민족통일대축전 이후 학생 등 500여 명 연행, 10여 명 구속. 

명동성당 입구에서 8.15연행, 구속자 석방과 민간통일운동탄압 분쇄를 위한 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 진행

8월 16일 ‘범추본’ 지도부 명동성당 농성돌입. 김양무, 문재룡, 박창균, 진관 연행, 구속. 박해전 ‘범추본’ 대변인 한겨레 신문사 농성(두달 보름여간 투쟁전개)

8월 20일 범민련 재중조선인 본부 대표단, 범민련 미국대표단, 범민련 캐나다 지역본부 대표단, 범민련 공동사무국, 범민련 일본지역대표단, 범민련 재일조선인 대표단 남측본부에 지지연대 편지 보내옴

8월 25일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정권의 탄압에 대한 남측본부에 지지편지


9월 2일 ‘국가보안법 철폐와 민간통일운동 탄압 분쇄 및 방북대표 환영대회’ 개최(임진각).  범투본(준), 「전국연합」, 민권공대위 공동주최.나창순, 서원철 방북 대표 연행, 구속(각 실형3년6개월 선고)

9월 4일 「범민련 남측본부」, ‘전쟁책동분쇄와 국가보안법 철폐 결의대회’ 진행


10월 1일 「범민련 남측본부」, 「전국연합」, 「한총련」에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범청학련 북측본부」 지지연대 편지 보내옴

10월 2일 미국양민학살만행에 대한 「범민련 남측본부」 규탄성명 발표

10월 3일 <민족의 날 기념 성명>발표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개천절 기념 남, 북, 해외 공동대회’ 남측 집회 개최(명동성당). ‘민족의 날 기념, 방북대표 석방, 한반도 평화정착과 조국통일을 위한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체결,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제로 하여 각계 4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

10월 12일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범청학련 북측본부」에서 방북대표들에 편지

10월 23일 ‘미군의 대학살만행 규탄과 미(한)독수리 훈련 즉각 중단, 주한미군철거, 북미명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남, 북, 해외 3자연대집회’ 진행 


11월 4일 「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 김양무 선생 병환 관련 소식을 북, 해외, 공동사무국, 각계단체에 전달 

11월 5~6일 ‘8.15범민족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3자 협의회’ 전화통신을 통해 진행

11월 7일 ‘범민족통일대축전 방북대표단 재판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주점’ 진행(홍익대학교)

11월 10일 김양무 상임부의장 병환 관련 각계 단체 투쟁제안. ‘3자 협의회’에서 <남, 북, 해외 공동대책위 결성 및 세계 양심세력에 보내는 공개서한> 발표. 제반 투쟁돌입.

11월 13일 「범민련 북측본부」, 「범민련 해외본부」, 규탄성명을 비롯하여 김양무 선생에 보내는 편지발송, 장명 등 암치료제, 모금운동 등 진행. 방북초청투쟁 계속됨(이후 북, 해외 지지지원 사업 계속됨)

11월 15일 ‘생존권 사수, 경제주권 수호! 국가보안법 철폐! 노동시간단축! 농가부채해결! 99 1차 민중대회’ 진행

11월 24일 ‘3대 헌장 지지관철 서명운동’ 제안.

「범민련 북측본부」, 명동성당 지도부에 격려 편지.

2000년 달력판매 시작

11월 27일 ‘국가보안법 전면 철폐를 위한 남, 북, 해외 공동대회’ 진행(서울, 평양, 도쿄 등 해외 각지 / 남측은 명동성당에서 진행함). 남측 내 70여개 통일애국단체 및 지역본부, 북측 16개 단체 공동성명 발표


12월 5일 ‘김양무 선생 방북치료 성사와 치료비 마련을 위한 하루주점’ 진행(한양대학교 콘서트 흘)

12월 7일 김양무 상임부의장 선생 병세악화와 관련 긴급기자회견

12월 10일 ‘2차 민중대회’ 참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3만여 명 참가)

12월 12일 ‘이북민주화 네트워크’ 관련 성명 발표, 민중대회 탄압과 관련한 규탄성명 발표

12월 16일 오전 8시 10분경 서울시경 보안2과 경찰들이 '긴급체포영장'을 들이밀며 박선애 「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시연합」 부의장, 김선분 「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시연합」 고문, 이현수 「범민련 남측본부」 재정위원장, 곽병준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이기형 시인 5인을 옥인동 대공분실 연행함. ‘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 참가에 관련한 조사를 벌임

12월 25일 ‘민간통일운동 탄압, 민중운동 탄압, 김양무 상임부의장 방북치료 불허 규탄과 양심수 전원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국민대회’ 진행

12월 25~26일 「범민련 남측본부」 송년한마당 개최(서울 한양대학교)

12월 26일 부문행사, 조국통일 3대헌장 지지 관철 결의대회, 출정식을 갖고 이후 전국농민회 총연맹 투쟁에 합류 

12월 28일 <3대헌장 지지관철 「범민련 남측본부」 결의문> 발표

 
[ 공동의장단 회의 ]

7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1999년 3월29일, 중국 베이징)  


-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 반외세투쟁과 사대매국책동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

- 전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이며 책임적인 역할을 높여나갈 것10차 범민족대회를 광범한 범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성대히 개최할 것

- 해내외 통일운동단체들의 연대와 공동행동 적극 실현할 것

- 진전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범민련 조직을 더욱 튼튼히 꾸리 것


[ 범민족대회 ]

1999년 10차 범민족대회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 


또한 9차 통일대축전 성사투쟁을 통해 기간 통일운동 선상에 존재하였던 '기만적인 대중화'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노선과 통일로 위장된 반 통일노선을 잘라내고 올바른 통일운동의 길이 무엇인가를 대중적으로 확인하였다. 

대중에 의거하여 조국통일 3대원칙을 튼튼히 거머쥐고 3자연대를 추진하였던 통일대축전과 9차 범민족대회는 김대중 정권의 광폭한 폭압과 악조건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통일애국민중의 열기와 의지로 성대히 성사되었다. 이로서 기간 분열주의자들이 내걸었던 통일운동의 '대중화'라는 것은 탄압이 두려워 3자연대라는 통일운동의 기본과 원칙을 내던진 것이고 나아가서는 정권의 개량화 무력화 책동에 일로한 것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9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을 통해 기간 통일운동선상의 분열과 혼탁함이 일소되고 원칙과 정도만이 승리의 보검임을 심어주었다. 또한 범민련의 위상이 확고히 다져지고 조국통일은 3자연대속에서 그 전진과 승리라 보장됨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9차 축전을 통해 민족의 통일기운은 비상히 높아지고 범민련 두리로 굳게 뭉쳐 반드시 90년대 연방통일조국을 안아오고야 말겠다는 민족의 통일의지 또한 꺽일줄 모르고 있다. 

남과 북 해외 7천만 겨레는 모든 장애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 나아갈 것이며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우리대에 이룩하고야 말 것이다.


1. 범민족통일대축전은 2000년대를 조국통일의 세기로 만들고자 하는 7천만 겨레의 통일의지를 세 계 만방에 과시한 역사상 가장 찬란한 대회였다.다가오는 21세기를 조국통일의 세기, 민족번영의 세기로 맞이하고자 하는 7천만 겨레의 통일의지 를 세계만방에 과시한 거족적인 축제의 장, 전 민족의 대단결의 장, 조국통일 대투쟁의 장이었다.


2. 범민족통일대축전은 미국과 김대중 정권의 전쟁책동, 민족분열, 탄압책동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미국과 일본, 김대중 정권의 한반도 전쟁책동, 민족분열 책동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환적 국면을 열어내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남긴 역사적인 대회였다.


3. 범민족통일대축전은 조국통일 3대헌장을 폭넓게 합의확산하며 조국통일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전기를 마련하였다.


4. 역대 대회사상 최상의 수준에서 3자연대를 이루어 민족대단결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대회였다. 3자 연대가 민족대단결의 생명이며 조국통일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확고히 다지는 대회였다.


5. 범민족통일대축전은 범민련의 조직력과 정치적 위상이 비상히 강화되었고 대중적 지반이 확대 되었다.범민련의 위상과 역할을 민족대단결의 구심체로 더욱 비상히 높여냈으며 범민련 조직을 확대강화 하고 대중적 지반을 획기적으로 넓혀 통일운동을 한 차원 높은 궤도로 올려놓았다.


6. 범민련을 중심으로 일부 분열주의 세력의 책동을 분쇄하고 남측 통일애국세력의 통일단결을 이루어냈다.범민족통일대축전은 김대중 정권의 탄압책동과 일부 분열주의 세력의 범민련 음해, 통일운동대오 분열책동을 대중적 힘으로 격파해 버리고 통일운동의 원칙과 신념을 확고히 다졌으며 범민련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단결을 새로운 높은 차원에서 실현시킨 대회였다.


7. 어느 해보다도 다양하고 왕성한 대중실천활동이 전개되어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크나큰 기여를 한 범민족통일 대축전이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