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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바로세워 진보운동 이끌어주셨다” - 오종렬선생 추모의 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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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측본부 조회17회 작성일 20-07-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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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별한 사연들 펼쳐진 ‘오종렬선생 추모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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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과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오종렬선생 추모의 밤’ 행사가 9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강병기 5.18민족통일학교 상임운영위원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상의 뿌리는 깊게, 표현의 수위는 낮게, 연대의 폭은 넓게, 실천기간은 무궁토록!”

많은 이들이 가슴에 새긴 가르침도, 애창곡 <섬마을 선생님>도 다시는 그의 입으로는 들을 수 없게 됐다.


9일 오후 7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민중과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오종렬선생 추모의 밤’은 저마다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눈시울 붉히는 진한 추모의 정으로 깊어갔다.


고인의 자주민주통일운동의 출발점이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대표해 박미자 선생은 “의장님께서는 과학교사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두루 과학을 가르치셨다”며 “의장님께서는 교사들의 스승이셨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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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미희 전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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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자 전 전교조 수석부의장이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교사 재직시 5.18광주민주화운동부터 전국교사협의회와 전교조 결성과 해직에 이르기까지 교육운동의 중심에 섰던 고인의 삶을 되짚고 “의장님께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사랑하셨고, 우리 교사들을 매우 사랑하셨다”며 “시대에 맞게 더 넓게 연대하여 전교조의 제2의 새로운 합법화도 쟁취하도록 실천하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여는 길에 교사로서, 사회변혁 운동가로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인과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에서 함께 일한 조양원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도지부 정책교육위원장은 “의장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동지이며 지도자였다. 진보진영의 대열이 흔들릴 때마다 항상 중심을 바로세워 진보운동을 이끌어주셨다”며 90년대 말 전국연합 난파 위기를 극복하고 2012년 통합진보당 탄압을 이겨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기렸다.


손미희 전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도 “1999년 동국대 전국연합 대의원대회에서 뵌 의장님은 온 세상을 호령하던 거대한 호랑이였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듯 엄청난 메아리고 거대한 산이셨다”고 회고하고 “언제나 아이들에게 인자하고 따뜻한 인자한 할아버지, 감옥을 가시면서까지 아이들에게 편지를 남기시는 그 마음을 어찌 감히 헤아리겠냐”며 ‘먼 여행 떠나는 길에 의장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울먹이며 낭독하기도 했다.


전농 활동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고인과 함께 했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강병기 5.18민족통일학교 상임운영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운동가의 삶은 열사의 시선 끝을 향해야 한다. 그것이 나침판이다. 그런 말씀 주신 바가 있는데, 마지막 가신 의장님의 눈빛은 온 힘과 마음을 모은 눈빛이셨다”고 전하고 “자주민주통일의 새 세상을 기필코 열겠다고 약속드렸다. 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은 제 생을 바치겠다”고 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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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완 마트산연맹 위원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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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은 슬픔의 힘을 모아 투쟁 의지를 다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기형 전농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의 밤 행사에서는 김기완 마트산업 위원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고, 신미연 겨레하나 사무총장 직무대행과 강새봄 진보대학생네트워크 회원도 추모글을 낭독했으며, 가수 이수진은 고인의 애창곡 <섬마을 선생님>과 <생이란 무엇인가>를 공연했다.


고인의 둘째 아들 오창규 씨는 “아버지 가시는 이 길에 함께 해주시는, 그동안 아버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시고 함께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고 가족을 대표해 사례하고, 2014년 4월 중병을 진단받고 두 달 뒤부터 5.18민족통일학교 건립에 매진했고 “마지막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응시하셨다”고 전했다.


김기형 사무총장은 “큰별이 지셨다. 그러나 더 큰 별이 되어서 우리를 지켜봐주실 거라 생각한다”며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통일로’ 의장님 뜻 우리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통일로’는 ‘만인학생의 만민토론 만민공동체’와 짝을 이뤄 고인의 마지막 유업이 된 5.18민족통일학교의 화두로 제기한 시대정신이다. 


추모의 밤 행사에서는 백낙청 전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조문객들이 영상으로 고인을 기리는 마음을 전했고, 한미FTA 반대투쟁,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투쟁 등 고인이 걸어온 길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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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둘째 아들 오창규 씨가 울먹이는 어머니 김평임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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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과 통일연대, 한국진보연대를 함께 이끈 한상렬 목사가 오창규 씨를 포옹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행사장에는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영길.김희선 전 의원, 한상렬 목사, 박석운.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박행덕 전농 의장 등 재야 원로와 활동가들이 대거 참석했고 부인 김평임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1938년 전남 광산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 출범에 참여해 이듬해 대의원 대회 의장을 맡아 수감 중 교직에서 쫒겨났고, 1991년 광주시의원에 당선됐지만 1994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수감됐고, 출소해 1999년 전국연합 상임의장, 2001년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 재야의 대표로 활동했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단 단장과 한미FTA 전지 방미투쟁단 단장,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등 각종 현안투쟁들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2008년 고 정광훈 전농 의장, 한상렬 목사와 함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하다 2014년 2월 건강이 악화됐지만 2015년 5.18민족통일학교를 설립해 초대이사장을 맡았고, 지난 7일 오후 10시 57분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장례식은 10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갖고 광주로 운구해 오후 8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광주 추도의 밤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11일 오전 8시 발인제를 갖고 오전 10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5.18민족통일학교를 거쳐 오후 1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하관식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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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의 영정은 꽃들로 둘러싸인 채 미소짓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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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도 자리잡은 고인의 빈소에는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故오종렬 의장 약력


1938년 11월 28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 출생

1952년 2월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1955년 2월 광주사범병설중학교 졸업

1958년 2월 광주고등학교 졸업

1961년 2월 광주사범대학 과학교육과 졸업

교원 임용(금산초금익분교, 고흥포두중, 신안암태중, 진도고성중, 전 남고, 광주동명여중, 전남사대부고, 전남여고, 광주 용봉중)

1966년 김평임과 결혼

1970년 2월 전남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졸업.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전교조의 전신)의 출범에 참여

1988년 전국교사협의회 대의원 대회 의장.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 전교조 관련자로 구속, 집행유예 선고. 옥중에서 해직됨.

1991년 1대 광주시의회 의원 (무소속)

1991년 11월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 의장 선출

1994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수감. 2년 8개월 복역 후 1997년 출소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준비위원장

1999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상임의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2001년 통일연대(6.15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상임대표

2002년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남측본부 대표

2002년 미군장갑차사건 여중생 범대위 대표

2003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2003년 한칠레 FTA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5일 단식)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단 단장 ( 단식 )

2005년 우리쌀 지키기 운동본부 대표

2005년 전용철 홍덕표 농민열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05년 APEC 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2005년 WTO 협상 저지 한국민중투쟁단 공동단장

2006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2006년 6월 한미 FTA 저지 1차 워싱턴 방미투쟁단 단장

2006년 12월 한미 FTA 저지 3차 몬태나 방미원정투쟁단 단장

2007년 3월 한미 FTA 저지 단식 농성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15일 단식)

7월 한미FTA 관련 서울구치소 구속

9월 한국진보연대 출범, 상임공동대표

2007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2008년 5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2008년 8월 광우병 투쟁 관련 수배와 구속

2009년 2월 출소

2009년 3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2013년 9월 통일의길 이사장

2014년 2월 간경화, 급성 신부전증 진단. 건강악화

2014년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현)

2015년 5.18 민족통일학교 설립 및 이사장 (현)

2019년 12월 7일 밤 10시 57분, 영면.


(자료제공 - 장례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