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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열정적이었던 민족통일 운동가 기세문 선생” - 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 추도의 밤 열려(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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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측본부 조회176회 작성일 20-10-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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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22일 저녁 8시 빈소가 마련된 구호전장례식장 별관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인원은 참석하지 못한 가운데 추도의 밤을 가졌다.


추도식은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영휴 새날 회장의 연보 낭독이 시작됐다. 이어 장례위원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서경원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의 조사가 이어졌으며 유가족의 추모편지로 마무리됐다. 


장례위원회에서 준비한 기세문 선생의 인터뷰 영상과 기세문 선생이 옥중에 계실 때 쓰셨던 ‘손가락으로 쓰는 시’를 장헌권 목사가 낭송하였으며, 민중가수 류의남의 조가도 이어졌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오늘 이 자리는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것을 슬퍼하고 추모할려고만 모인 것이 아니다. 고인을 진정으로 추도하는 길은 남은 자들이 혁명운동을 해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34년 광주 광산구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6년 ‘조국평화통일동지회’를 조직하여 ‘평화통일선언문’을 발표로 처음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8년 통일혁명당 호남지역을 조직하고 1971에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어 지법에서 사형선고를 대법에서 15년형 확정을 받았다. 1986년 출소후 광주전남양심수후원회, 범민련 남측본부, 민족자주평화통일 광주전남회의, 통일의집 등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했고, 1995년 통일애국열사 장례식, 범민련 관계로 구속, 2003년 백운산 전적비 사건으로 긴급체포되기도 했다. 


이어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조사를 통해 “민족사랑 민족통일을 이루어내신 모범적인 분이지만 이제는 보내드려야 하는 처지”라며 “역사는 우리 편이며 먼저 간 열사께 부끄럽지 않은 승리의 역사로 복원시키는 문제만이 남아있다. 엄혹한 시절 누구도 말하지 못할 때 먼저 조직하고 투쟁하신 모범적인 분이셨다“며 선생을 회고했다.


서경원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은 조사를 통해 “기세문 선생님은 한반도 인민의 철저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 투쟁하시고 숨을 멈추는 그 시간까지도 우리에게 채찍질 하신 분이셨다.”며 “우리는 거짓과 위선과 변명을 버리고 철저하게 정신을 무장해 나아가며 분단을 깨야한다.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우리 진보단체들은 현재의 상황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의 딸 기승의 씨는 “살아 계실 적 잘해드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이 아프다”며 “저 하늘에서 아빠가 꿈꾸던 자유와 해방을 마음껏 누리시라”고 말하고, “아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기세문 선생은 21일 낮 12시 1분에 2년이 넘는 투병생활 끝에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3일 오전 10시 빈소에서 발인해 오후 1시 30분에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영결식을 가졌다.


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은 숨이 붙어있는 동안 반외세, 반미자주 민주를 외치며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해방, 민중해방, 평등세상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통일운동가 서산 기세문 선생 연보


- 1934년 1월 20일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 성내마을 출생

- 1953년 광주사범학교 7회 졸업, 교직생활

- 1956년 「조국평화통일동지회」조직, 「평화통일선언문」발표, 구속, 2년형

- 1958년 출소, 농촌운동 - 1960년 4․19 혁명 참가

- 1961년 「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대의원 5․16 군사쿠데타로 피신, 연탄 배달부와 청소부로 은신 생활

- 1968년 통일혁명당 호남지역조직

- 1971년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구속, 지법 사형선고, 대법에서 15년형 확정

- 1985년 1월 31일 아들 기혁 전남대에서 학생운동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채 발견

- 1986년 출소

- 1987년 6월 항쟁 참가

- 1988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재건)조직 참가

- 1990년 자연건강교실, 단식원 개설

-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 준비위 참가

- 1995년 통일 애국열사 장례식․범민련 관계로 구속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항의, 집행유예

- 1996년 광주전남 양심수 후원회 회장

- 1999년 「통일의 집」(장기수 후원회) 운영위원장

- 2003년 백운산 전적비 사건으로 긴급체포, 집행유예

- 2004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민족자주평화통일 광주전남회의 의장

- 2018년 투병 생활 시작

- 2020년 10월 21일 낮12시1분 운명


유족 : 부인 이절자 여사, 장남 고 기혁 열사, 차남 기명, 딸 기승의


[저서] 자연의 힘으로 병이 낫는다 꽃 안 핀 봄(옥중시집) 산골의 노래(어린이 시집)

[편역] 러시아의 가정교육 세계의 단식건강법

[근간] 「과도기의 론리-우리 민족의 살길」


(자료제공 – 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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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22일 저녁 8시 빈소가 마련된 구호전장례식장 별관에서 추모의 밤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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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휴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 연보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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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낙기 통일광장 전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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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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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헌권 615광주본부 광산구지부 대표가 고 기세문 선생이 생전에 쓴 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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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원 범민련남측본부 고문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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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의남 민중가수가 고인이 생전에 즐겨부르던 ‘봄이 사과꽃이 하얗게 피어나고~’조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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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의 씨가 추모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지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