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성명∙논평

  • 소식
  • 공지∙성명∙논평

[최후진술] 이경원 전 사무처장, 최은아 전 선전위원장의 최후진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범민련남측본부 조회69회 작성일 11-11-14 14:15

본문

최 후 진 술
2009고합731 국가보안법 위반
피고인 이경원
 
오늘 이 자리는 나에게 두려움의 자리도 아닐뿐더러 설렘이나 흥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오늘의 재판이 지난날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그랬던 것처럼, 특히 범민련 남측본부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그랬던 것처럼 잘 짜여진 각본같이 어떠한 변화도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를 해보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거나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재판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역지사지 해본다면 지금의 재판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활동은 그 자체로 애국적인 일이며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검사는 재판정에서 “지금 이 재판이 어떤 재판인지 아느냐. 당신의 머릿속을 재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국가보안법의 재판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헌법을 들먹이면서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과연 누구의 생각이 옳은 것이고 누구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까?
마치 어느 누군가를 속박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군가를 구속한다는 것은 어떤 틀에 사람들을 가두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어떤 틀에 맞추려 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틀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것만이 진리라고 믿지 마십시오. 참된 이치는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으로 정의를 재단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사회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정의는 어느 특정인이나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존재하고 발현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어느 일방이 또는 어느 집단이 다른 사람 또는 대중에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이를 억압하는 것은 비민주이며 심해지면 파쇼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구치소에서 공소장을 받아보고 경악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조작될 수 있을까. 내가 만난 모든 북측사람들은 공작원이었고 모든 대화는 지령이 되고 모든 활동은 지령을 따른 활동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북에서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이나 신문 보도도 공개지령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러한 위법 사실을 국정원과 검찰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북측사람들을 만난 것이 2004년 11월 금강산이었으니까 2009년 5월 구속된 시점으로 따져보면 자그마치 5년입니다.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공작원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령을 받아 잠입하여 이를 수행한 사람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위대한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5년을 방치할 수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그 행위가 별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거나, 6.15시대에 그 정도는 인정이 된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뭔가 더 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것이 나올 때까지 예의주시하면서 아니 감시하면서 기다려 왔거나 그 중 하나일터인데 뭔지는 모르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아니 숨소리조차 감시하면서 10년을 따라다녔으니 참 오래도 참고 버텨냈습니다. 국정원, 경찰, 검찰 등 국가권력의 인내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그 인내에도 한계에 다다랐나봅니다. 그 인내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 미쳐 날뛰게 되어 있습니다. 둑이 무너지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이 그랬습니다. 어느 일방이, 어느 집단이 다른 일방에게 또는 시민 대중에게 색깔론을 들고 나와 붉은 칠을 해댔습니다. 촛불시민에게, 노동자에게, 방송인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사람들에게 그랬습니다. 아, 이게 정상적인 나라일까요?
구치소에서 공소장을 들여다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요즘엔 고문 없이도 이렇게 조작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공소장을 받아보던 첫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두껍기도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다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흥분상태가 되면서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정도에 이르면 그래도 이성적으로 판단이 돌아온 상태입니다. 그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가 말이 되어야 반박도 할 텐데 소설 같은 얘기를 소설로 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재판부에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 많은 증거자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소장과 소위‘대화록’이라는 자료만큼은 문구 하나하나까지 대조하면서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데서 핵심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문구입니다.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느냐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보안법 관련자의 판결문을 보면 ‘북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나 동시에 남북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으므로’라고 하면서 북의 이중성을 거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잣대를 통일운동에 적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통일운동의 본질을 왜곡하는 잘못된 규정입니다. 최소한 범민련의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통일운동은 철저하게 민족적 입장에서 진행합니다. 민족적 입장에 있다는 것은 북의 사상과 제도를 지지하거나 남의 사상과 제도를 지지하는 운동이 아니라 철저하게 공존공영하는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는데 있습니다. 통일된 조국의 미래에서 현재를 돌아다보면 북의 역사도 남의 역사도 우리민족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를 써 나가는 통일운동은 그 어느 한쪽을 부정하는 방식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공존공영하는 민족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민족의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활동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남측의 체제를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통일운동을 하는데 국가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남쪽에도 우리민족이 엄연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의 이중적 성격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통일운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범민련의 통일운동은 적화통일노선과는 거리가 멀고 오로지 민족의 공존공영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니, 적화통일노선이니, 반국가단체니 하는 언어들은 모두가 통일과는 거리가 먼 말들입니다. 그 낱말들은 남북 사이에 체제와 대결을 앞세우면서 생겨난 말들입니다. 나는 그런 말들을 싫어합니다.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보안법이야 말로 통일운동을 재단할 수 없는 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은 그 성격과 취지가 북을 반대하는데 있습니다. 민족의 통일과는 먼 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합니다.
 
범민련은 3자연대조직입니다. 통일은 남쪽만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북쪽만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동포들도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3자연대입니다. 통일을 바라는 전 민족이 통일을 위해 단결해서 힘을 보태나가자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3자연대를 통일을 이루기 위한 본성적요구라고 합니다. 3자연대운동은 민족대단결운동입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국통일 3대원칙 중에서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도가 3자연대입니다. 그래서 1990년에 남, 북, 해외의 통일을 바라는 각계각층의 제 단체들이 합의하여 만든 조직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입니다.
이러한 범민련 남, 북, 해외본부는 각기 동등한 지위에 있습니다.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추종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범민련 북측본부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공작원을 만나서 지령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대화록을 꼼꼼히 읽어보시라고 한 것입니다.
범민련은 모든 사업을 공동의장단회의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연초에 남북해외의 의장단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는 없는 조건이지만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사업에 대해 토론을 하고 결정을 합니다. 이 결정에 따라 남, 북, 해외본부가 사업을 벌여나갑니다. 결정된 사업은 각기 실정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얼마든지 사업을 벌여나갈 수 있는데 굳이 어느 한 사람이 북측의 누구를 만나서 지령을 받아 사업을 벌일 일도 아니고 사업이 그렇게 결정될 일도 아닙니다.
범민련은 남, 북, 해외본부가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공동사무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동사무국은 연락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일본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공동사무국은 사무총장과 복수의 부총장, 그리고 집행부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일본에 상주하면서 주로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박용부총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사무국은 덴마크에 거주하는 임민식 사무총장이 총괄하고 있습니다. 박용부총장을 공작원으로 규정해 놓고 모든 연락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였다고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통신연락은 박용부총장이 아니더라도 가장 적합한 누군가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박용부총장일 뿐입니다.
박용부총장을 통한 통신연락은 범민련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6.15민족공동위원회도 해외측위원회 사무국장(현재는 상임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용이라는 사람과 똑같이 통신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범민련과 6.15남측위원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적단체의 차이인가요? 그렇다면 이적단체가 하는 모든 일은 위법이 되는 것인가요? 도대체가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범민련이 하는 일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추진합니다. 어떠한 이유라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남과 북 어느 일방이 다른 한 쪽을 무력을 통해서 통일하려는 것을 반대합니다. 우리 조국의 반도에서는 1년 내내 전쟁연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천리강산에 화약내가 아니라 향긋한 꽃내음이 퍼져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범민련은 주한미군이 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70년이 다 되도록 수도 한 복판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 망신거리입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 이태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문화가 넘쳐나기 때문일 테지만 한편으로 용산 미군기지는 그야말로 조롱거리입니다. 미군의 트럭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씌우고 지나가는 동네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파수꾼처럼 서 있는 미군기지를 보며 자란 내게는 치욕과도 같습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기간에 미군이 저지른 범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깝게는 두 여중생이 탱크에 깔려 죽었고 며칠 전에는 미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를 책으로 쓴다면 수백 수천 권은 만들어질 것입니다.
주한미군을 앞세워 정치 군사 경제 문화적으로 예속시키는 미 제국주의의 지배전략을 반대합니다. 우리민족 내부의 일에 간섭하는 미국을 배격합니다. 그에 빌붙어 기생하는 모든 사대주의와 사대주의자들을 뿌리 뽑으려 합니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하는 시도 있습니다만 나는 미군기지 담장에 피는 꽃조차 싫어합니다.
 
범민련은 연방제통일을 지지합니다. 연방제는 나쁜 제도가 아닙니다. 연방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차라리 북에서 주장한 모든 것을 금한다는 법을 만드십시오.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연방제로 이뤄졌습니다. 거기에는 그 나라가 연방제를 채택하게 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세에 의해서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가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해오면서 통일된 단일민족국가를 세우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데 어느 한 쪽이 무너지길 기다리자니 어느 천년에나 될지 모르겠고 평화적이면서도 가장 빠른 길이 있는데 ‘그것이 연방제 통일이다’라고 정리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그것이 왜 죄가 됩니까.
 
범민련은 국가보안법을 반통일악법으로 규정합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시는 것은 범민련의 숙원사업이며 반드시 폐지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범민련을 합법화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분단이 유지되고 사회가 절름발이가 되어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는 법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에서 예술에서 사상에서 불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사회적 장치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통일문제는 철저하게 통제되어왔습니다. 6.25전쟁이 중단된 지 불과 7년 만에 4.19혁명이 일어났고 그 한복판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을 만큼 통일은 우리민족에게는 염원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을 66년 동안이나 막아 온 것이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이런 악법을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나는 범민련과 함께 통일운동을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8년 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구속도 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길은 절대 후회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애국의 길이었고 자랑스러운 길이었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든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나서 자라는 한 인간으로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외면하거나 비껴갈 수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민족 구성원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의가 넘쳐나야 할 재판정이 국가보안법에 의한 재판에서는 가장 정의롭지 못한 재판정이 되어왔습니다. 이 자리가 그런 악습을 반복하는 자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오늘의 이 재판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정의를 볼 수 있다면 이 자리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전환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훗날 오늘의 이 재판을 가장 정의로웠던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조그만 용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법입니다.
 
조국을 통일하는 우리민족의 역사적 위업을 나는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혹여 내가 미쳐 다 이루지 못한다면 나의 아들이 대를 이어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2011년 11월 9일
서울지방법원에서
----------------------------------------------------------------
 
최후진술

2009 고합731 국가보안법 위반
피고인 최은아

지난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재판이 이제 마무리 되는 시점입니다.
그동안 재판정을 꾸준히 찾아주셨던 많은 원로 선생님들,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검찰은 저희 세 사람에게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동조 /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특수 잡임, 탈출, 통신, 연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항을 적용하였습니다. 북측과 접촉하였을 경우, 적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조항을 적용한 셈인데,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 입장을 정리하여 말하겠습니다.
 
1.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통일운동’은 기본적으로 ‘공존’의 입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명백히 실존하고, 자체의 운영원리 아래 운영되는 조건에서 상대방의 ‘소멸’을 전제로 한 통일운동은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그동안 남북 양 정부 사이에 채택된 모든 합의문은 모두 ‘공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존’은 ‘자신’을 명확히 세울 때 가능합니다. 분단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고, 이에 기초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별할 줄 알아야 공존도, 공동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통일운동 과정에서 일방적인 추종은 있을 수 없으며, 역으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2.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고 가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우선, 검찰과 법원이 그동안 당연시 하며 전제로 말하고 있는  ‘반국가단체’ 문제, ‘이적단체’ 문제입니다.
검찰과 법원은 북이 불법 조직된 정부이고, 적화통일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적화통일노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한편, 통일문제와 관련한 북의 주장은 모두 체제전복, 적화통일을 위한 통일전선전술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측의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북측이 제기하고 있는 통일방안인 연방제 통일 방안은 어디에도 체제전복, 흡수통일을 거론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정책으로 발표된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통일방안, 91년 낮은단계의 연방제, 2000년 연방연합방식 모두 일관되게 남, 북 각 지역정부의 체제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한다는 것을 밝혀 왔습니다. 지난 모두진술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명박 정부 하 통일부가 공식 발간한 ‘북한개요 2008’에서 정부 스스로, 북측이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방안, 대남정책을 정립하고 있다고 시인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내용을 현실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지난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체제전복 의도’의 근거로서 북의 조선노동당 규약을 사실상 유일한 것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 이른바 ‘체제전복의도’로 해석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합니다만, 92년 사회주의 헌법이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한다고 수정되었고, 2000년 정상회담 이래 김대중 대통령과의 대화, 언론사 사장단과의 면담 등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지속적으로 규약 개정 의사를 밝혀왔으며, 30년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실제로 규약이 개정되는 등 ‘체제전복의도’라는 일각의 주장을 원천적으로 불식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제일 마지막에 따라오게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의 사회주의 헌법과 당 규약의 개정에서 반영하고 있는 내용이 이미 북측 사회에서  실현되어 온 것이라는 점을, 합리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노동당 규약 개정 이전인 2008년 이미, 북측은 90년대 초부터 체제 존중형 통일방안, 대남정책을 표방해 왔다고 평가했던 점을 다시 상기 드리겠습니다.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이른바 ‘체제전복 시도’의 근거로서 주장해 왔던 모든 내용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통일부는 2008년 이미 이를 시인해 놓고도 오늘날 입장을 바꾸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검찰과 국정원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많은 정치적 주장들을 이적행위로 몰아세우고 있는 지금 같은 태도라면 박정희 정부가 합의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원칙 조차도 북의 노동당 규약과 사회주의 헌법에서 거론하고 있다는 이유로 ‘체제전복’ 정책이라 주장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여행자들을 침대에 눕혀 놓고 길이가 맞지 않으면 그 발목을 잘라대던 프로크루테스라는 강도의 일화가 나옵니다.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대표적으로 일컫는 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야 말로 현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에 기초하지 않은 채, 앵무새처럼 ‘적화통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검찰의 태도에 꼭 맞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등을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며, 국가의 존립,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체제전복시도니 이적행위니 운운하는 것은 이같은 편견과 반민주성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이 주장들은 남측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관련한 입장일 뿐, 사회 체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나 공안기관은 앵무새처럼 이를 떠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삼권분립, 시장경제 등으로 상징되는 것이지 주한미군 주둔으로 상징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한미군 주둔이 민주주의 실현과 직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체제경쟁’에 몰두하고 ‘한미동맹’을 생명처럼 여겨오던 미국 정부조차도 정권 주도 세력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거리낌 없이 주장하곤 했습니다. 1970년 애그뉴 미 부통령은 5년이내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공약하였고, 76년 카터 대통령 후보는 82년까지 완전철수한다는 입장아래 철수 일정을 공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989년에도 극히 소수의 미군만을 잔류시키고 철수시킨다는 감축계획을 의회가 승인한 바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체제 경쟁을 매우 중시하던 미국에서 조차 공공연하게 철수 문제를 거론해 왔던 상황인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 땅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이적행위’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를 상징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살려 만든 법이며, 이 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유엔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 인권 기구들의 숱한 폐지 권고안이나, 지난 2004년 18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폐지발의안을 상정시켰던 사실은 국가보안법이 오히려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훼손하는 법안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주장들을 체제전복, 이적행위로 판단한다는 것은 검찰 스스로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는 함량 미달 수준임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더구나 집회, 시위, 결사, 양심,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현안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재단한다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입니다.
 
다음으로 범민련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검찰은 범민련 북측본부를 ‘통일전선부’가 관장하고 있는 조직으로 주장하는 한편, 공동사무국의 ‘박용’ 부총장에 대해서도 공작원으로 주장하면서 범민련 남측본부를 ‘이적단체’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검찰이 범민련 북측본부를 ‘통일전선부’가 관장하고 있는 조직으로 주장하는 근거로는 ‘장철현’이라는 자의 증언을, 박용 부총장이 공작원이라는 근거로는 영사증명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일말의 객관성 조차 없어 법원의 증거중심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우선 ‘장철현’이라는 자의 신원을 입증할 의무는 검찰측에 있습니다만, 검찰은 이 사람이 ‘통일전선부’에 근무한 자라고 하면서도 그 신원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전선부’에 근무하며 범민련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자가 범민련 결성 시기를 98년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범민련은 90년에 결성된 조직으로, 90년대 전 기간 동안 남북해외가 함께 하는 범민족대회 개최 제안을 주고받았으며, 90년대 전 기간에 걸쳐 범민련을 제외하고는 민간통일운동을 말할 수 없는 그런 단체입니다. 범민련이 98년 들어 결성되었다는 주장은 장철현이라는 자가 통일운동 단체의 현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 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내세워 범민련 북측본부를 통일전선부가 관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공작정치에나 어울리는 주장입니다.
또한 박용 부총장에 대한 영사증명서는 그 형식도 문제이거니와, 공작원이라는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사증명서에서 근거로 거론하고 있는 것은 그가 북을 자주 오갔다는 것과 범민련 관계자들을 만나 여러 사업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범민련 관계자들은 박용 부총장을 만나거나 접촉한 것이 문제고, 박용 부총장은 범민련 관계자들을 만난 것이 문제라니 이런 순환론이 어디 있습니까.
 
3.
검찰의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검찰은 우리 세 사람이 북의 지령을 받을 목적을 갖고 고의적으로 신분을 은닉하여 각종 실무접촉, 행사 등에 참가하여 북측 공작원과 회합을 갖고 미군철수운동 활성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활성화, 6.15공동행사 준비위 내 역할 강화 등의 지령을 받고 잠입, 이를 수행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신분을 은닉하였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피고인 심문에서도 이미 언급되었습니다만, 이 역시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전형적인 끼워 맞추기에 불과합니다. 교수나 연구원들의 사외이사 겸직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단체 역시 많은 연대기구를 구성하고 겸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민련 성원들에 대해서만 마치 이를 불순한 의도인양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본인을 예로 들자면, 2001년부터 통일연대에서 상근해 오면서 2001년 6.15 1주년 공동행사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2002년 8.15대회, 2004년 6.15행사에서 대변인실, 정책팀장 등을 맡아 꾸준히 공동행사 준비에 함께 해 왔습니다. 2004년 6.15행사 때에는 통일부로부터 범민련 성원이라는 이유로 불허 통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반년후인 12월에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2007년의 경우에도 11월에는 범민련 성원이라는 이유로 불허되었으나 한달 후인 12월에는 다시 허가되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8.15 사건에 대한 통일부의 발표나, 2010년 통일부 고경빈 전 국장의 증언 과정에서 범민련 성원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한 점 등을 볼 때, 그리고 그동안 허가, 불허가 반복되었던 과정을 볼 때, 신분을 은닉하였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또한 지령수수를 위해 방북하였다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연대는 30여개의 단체가 참가하여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단체로서, 어느 한 단체나 개인이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조직입니다. 실무접촉이나 공동행사 또한, 참가단체는 많으나 참석자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이 가고 싶다고 하여 자의적,독단적으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실무접촉과 공동행사 준비과정에서 구체적 지위와 역할이 있을 때, 이에 의거하여 참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는 6.15남측위원회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본인의 예를 들자면, 통일연대 교류사업계획을 입안하고 구체화하는 정책위원장으로서 교류사업 협의를 위해 실무접촉에 참가하였으며, 또 공동행사의 문건들을 담당하는 정책팀장으로서 6.15공동위원회 실무접촉 및 행사들에 참석하여 공동합의문 초안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또 이러한 경험을 살려 공동행사 백서 제작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제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령수수를 위해 방북하였다는 것은 여러 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연대단체의 성격, 실무접촉의 성격 등을 왜곡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통일연대의 실무접촉이 고구려 유적답사, 백두한라 통일대행진 등의 교류사업, 6.15공준위 구성과 공동행사 준비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6.15남측위원회의 실무접촉의 경우 6.15공동행사준비위 구성문제와 5돌 기념행사 등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다른 재판들에서 입증되기도 하였고, 별도의 서증자료를 제출한 바 생략하겠습니다.
 
저희의 접촉과 방북은 통일부의 허가 아래 진행된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지난 정권시절에는 문제 삼지 않던 일들을,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문제 삼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탄압, 정치재판입니다.
 
검찰이 또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또한 각종 접촉 과정에서 북측이 언급하였다는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범민련 역할 강화 등의 주장이 지령이라는 것인데, 이 같은 주장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정당한 입장일 뿐 아니라, 범민련 남측본부가 그 결성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실천해 온 사업이라는 점에서 지령 수수가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미군철수 공대위 구성, 공동사진전 등 또한 실무접촉 이전부터 사업으로 추진해 오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와 범민련 이적규정 철회와 같은 정치적 주장들에 대해 북의 지령을 운운하고 이적표현물을 운운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한 개인, 한 단체에 대한 모욕이며, 현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한하는 반민주적 발상에 다름 아닙니다.
 
4.
지난 모두진술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산속에 사람이 자주 다니면 길이 나고, 다니지 않으면 풀로 막힌다’는 맹자의 말은 제가 통일운동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상기하고 있는 말입니다.
분단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분단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될 일이라면 산을 넘는 과정에 힘을 보태고, 길을 넓히고 다지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고 회피하는 순간, 길을 내고 넓히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기에, 숫자를 늘려 1/n의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사법살인의 희생자가 되었던 조봉암 선생이나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경우처럼 분단문제를 고민하고 통일의 여러 대안을 제기했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수십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당시 정권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탄압, 사법살인의 문제점이 폭로될 만큼, 남북 사이의 통일문제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쉽지 않은 의제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민주주의, 인권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마련이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민중들의 노력은 모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지금의 현상은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라 확신합니다.
국민들의 정권 심판 의지가 거듭된 선거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남북대화, 북미대화가 이제 재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일시적 어려움의 시기가 지나가고 곧 화해와 협력, 단합의 시대가 도래 하게 될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증진, 평화와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한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