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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 원진욱 사무처장 1심 최후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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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범민련남측본부 조회73회 작성일 13-01-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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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후 진 술


 
사   건 : 2012 고합 1050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등
피고인 : 원진욱
날   짜 : 2012. 12. 18
 

안녕하십니까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원진욱입니다.
 
먼저, 영하의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법정에 찾아와주시는 여러 원로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범민련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자리에 계시는 통일운동 원로선생님들과 동지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감옥이 아닌 병원에서 제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해주신데 대해 재판장 설범식 판사님을 비롯하여 황운서, 이혜린 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있을 1심 판결과 상관없이 세분 판사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유신독재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한민국 공안검찰의 인권유린 행태에 대해서입니다.
 
법과 인권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검찰이 지난 시기 저에게 한 행위로 볼 때 과연 이들이 검찰로서 법집행을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권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6월 26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갑산성 암 의심’진단을 받고, 하루빨리 갑상선암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권고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후 7월 16일 정밀검사와 수술치료를 위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진료를 예약해둔 상태에서 뜻밖에 7월 5일 아침, 긴급체포가 되었습니다.
저는 체포된 다음 날(7.6) 홍제동 대공분실(경찰청 보안3과) 수사관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거듭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음 날 7월 7일, 10:30경 서울중앙지방법원 321호 법정에서 박병삼 판사(서울중앙지법 43단독)의 주관 하에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저와 변호인단은 시종일관 불구속수사를 호소했습니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이니 만큼 치료와 조사가 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박병삼 재판장께서는 ‘오늘 밤 늦게라도 괜찮으니 병원 <진단서>를 꼭 제출해 달라’고 하고 심리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저의 가족이 병원을 찾아 갔을 때는  이미 담당의사가 퇴근한 후라 <진단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재판부에 <진단서>를 제출하지 못한 채 실질심사가 이루어졌고, 밤 12시가 넘어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런데 3일 뒤 7월 10일,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에 우연히 저의 진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서류더미 사이에 있었는데 제 눈에 뛴거죠. 그 진단서를 본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진단서 발급일자가 7월 6일이었습니다.

그날(7.6) 저의 이야기를 듣고 홍제동에서는 급히 수사관들을 인천성모병원으로 보내 미리 진단서를 받아놓았던 것입니다. 다음날(7.7) 영장실질심사 때 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해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고 있을 때 경찰과 검찰은 저의 진단서를 이미 손에 쥐고 있었고, 검찰은 고의로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리던 그날 법정에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소속의 김성훈, 박주현 검사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은 소위 ‘신성한 법정’에서 소란을 피워 ‘법정모독죄’를 저질렀다고 범민련 편집국장을 구속시키고 6년을 구형한 바로 그들입니다. 바로 그 자신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위증을 하면서까지 저를 구속시켜려 한 것입니다.
 
검사 김성훈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김법우 교수가 저를 직접 진료했다고 하면서 그 의사의 소견으로는 '원진욱의 갑상선에 있는 결절은 정상인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작은 혹에 불과하고 휴식을 취하고 적당히 운동을 하면 금방 낫는 정도이지 수술을 해야 한다거나 구속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현재 아주 건강한 상태로 보이며, 반드시 구속시켜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합니다. PPT영상물까지 준비해와서 저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병명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저는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인 없습니다. 다만 은평경찰서에 구금돼 있을 때 7월9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의사와 간호사 한 명이 작은 의약품상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 청진기로 등과 가슴을 대보고 손으로 목 부위를 몇 번 만져 본 다음, 차트에 ‘정상’이라고 쓰고는 도망가듯 나가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의사에게 “이렇게 해서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느냐”고 물어봤고 의사는 알 수 있다며 “당신은 갑상선암이 아니며 정상”이라는 말만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동하고 온 경찰관은 국가정보원에서 의사를 보내서 데리고 왔다는 말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그 뒤 이 검진기록은 재판부에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노수희 부의장님의 경우 수사보고(노수희, 2012.7.5 체포후 건강검진 실시 결과)라는 제목으로 건강검진 기록이 제출되었지만 이날 저의 신체검사 소견서는 사라졌습니다.
 
그 뒤 7월 13일 11:00경 서울중앙지방법원 319호 법정에서 양석용 판사(서울중앙지법 51부)의 주관 하에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저는 다시 김성훈 검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가본 적도 없는 병원에 갔다고 거짓말을 하느냐?” 그러자 김성훈 검사는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다만 세브란스 병원 김법우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을 뿐이다.”라고 다시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거짓말임이 드러납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보면 단순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증거목록 순번 1136번, 10363쪽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 암센터 김법우 외과전문의 답변내용(네이버지식) 1부> 증거자료는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진료소견서 내용 중에서 질병분류번호 “E041”을 네이버 검색을 통해 얻은 자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질병분류번호만으로 검색한 결과를 앞세워 대학병원 의사의 “갑상선암 소견을 보여 외과로 수술을 권고하였다.”는 소견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였습니다.
 
이렇게 검찰의 악의적인 거짓말을 통해 구속이 확정되고, 그 뒤 8월 9일, 기소가 될 때까지 가족을 포함하여 접견, 서신수수 등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수형자의 외부교통권’ 일체가 검찰의 일방적인 지시로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과잉조치는 국가권력에 의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한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써 현재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후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서울구치소 측에 거듭 외부진료를 요구하였고, 서울구치소 측은 구속 25일 만에 7월 30일, 협력 병원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외부진료를 허용하게 됩니다. 이 병원 내분비내과 김모 교수는 저의 가족들이 제출한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검사한 영상자료와 진료소견서 등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진단을 하게 됩니다. ‘상기환자는 갑상선암이 맞고, 확진 및 치료를 위해 갑상선 절제술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는 소견과 함께 ‘갑상선암의 경우 특히, 40대 미만 남성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은데 환자의 경우 초음파 사진으로 볼 때 이미 근육조직으로 전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임파선 등 다른 부위의 암 전이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시급히 수술을 해야한다’는 권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저와 변호인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무근’이며 간단한 운동과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거듭 반복하였고, 또한 지난 9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제30형사부 이 곳 법정에서 저와 변호인이 보석석방을 요청한 것에 대해 박주현 검사는 “몸이 조금 아프다고 아무나 석방시켜주면 어떻게 하냐! 절대 안된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습니다.
 
 
저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된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1.03평 독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암은 계속 진행되었고, 결국 갑상선 주변조직과 임파선 등으로 암이 전이되었음이 최근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확인되었습니다.(10.23) 구속되어 있는 동안 암이 다른 부위로까지 전이되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이 이렇게 계속해서 거짓주장까지 하면서 암 투병 중인 환자를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게 방해하고, 방치해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건강권은 바로 생명권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맨 앞자리에 놓이는 핵심적인 기본권입니다. 그리고 건강권은 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치료권을 말합니다. 즉,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누군가 방해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의 진단은 무시한 채 정체모를 의사의 형식적인 진료결과와 확진 전의 병원 진단만을 내세워 암이라는 질병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무시한 채 구속에만 집착한 공안검찰의 인간에 대한 존엄의식은 개탄할 정도입니다.
 
검찰은 법과 인권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법원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그러한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겪은 이번 과정에서 국민은, 인권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과 다름없는 건강권을 이처럼 유린한 검찰과 국가 공권력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다음으로 검찰을 비롯한 경찰, 국정원 등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냉전적 공안이데올로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월 5일, 저희 집이 경찰들에게 압수수색 당하고 압수당했던 물건들 중에는 1997년 학생운동을 하던 중 처음 투옥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제게 붓글씨로 써주신 글이 있습니다. ‘이민위천(以民爲天)’, ‘이신작칙(以身作則)’, 그 뒤 저는 아버지께서 손 수 써주신 이 글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경찰관들이 ‘이적표현물’이라고 해서 압수해갔습니다.
 
홍제동 대공분실 수사관들은 이것을 문제 삼고 추궁했습니다.
‘왜 이런 문구를 소지하고 있느냐?’, 심지어 ‘북으로부터 전해 받은 물건이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검찰은 이것을 증거로 제출했고, 북의 주장에 동조하고 찬양, 고무하는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글귀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선동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면서 같은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였다.>며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을 위반 했다는 것입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글씨 이민위천 [以民爲天]
 
위의 글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휘호작품 ‘이민위천(以民爲天)’ 입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통치철학으로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 또는 ‘백성을 소중히 여겨 치국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김 전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잘 배어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 작품은 2009년에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등 5명의 역대 대통령의 휘호작품을 함께 전시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 전시회는 KBS 9시뉴스에 자세히 보도되었고,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민위천(以民爲天)’에 담긴 뜻은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종영된 <닥터 진>이라는 제목의 MBC 주말드라마에 흥선군이 훗날 고종이 되는 아들 명복에게 이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이냐?” “하늘입니다.”
“그러면 조선에서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이냐?” “백성입니다.”
“백성을 하늘 같이 여겨야 하느리라.”
이 역시 흥선군이 명복에게 임금의 첫 번째 덕목이 되어야 할 ‘이민위천’사상을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이민위천(以民爲天)’은 사마천의 ‘사기’와 ‘서경’ 등 중국 문헌에는 물론 조선의 왕이라면 가장 먼저 배우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통치이념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족종교인 동학에서는 ‘사람이 즉 하늘이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내천(人乃天)과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듯 ‘이민위천(以民爲天)’ 사상은 조선근대의 대표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과 전통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원이 되는 인권의식과 주권의식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서예글씨 이신작칙 [以身作則] - 41.5×165㎝ 종이에 먹 1948년 작

다음은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1948년에 쓰신 ‘이신작칙(以身作則)’  휘호작품입니다.

‘이신작칙(以身作則)’은 ‘자신이 먼저 남보다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서, 규칙을 만들다’는 뜻으로 ‘솔선수범(率先垂範)’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귀는 일제시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많은 애국지사들에게 널리 쓰이던 말로써 당시 항일운동 선각자들의 좌우명과도 같은 글귀였습니다.

3년 전 범민련 이규재의장님 재판 도중에 증인으로 나오셨던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셨던 노중선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민족일보]사건으로 구속된 조용수 사장이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똥을 똥이라 부르고 밥을 밥이라 부르지 무어라 부르겠는가? 북쪽 사람들이 쓰는 말을 우리도 쓴다고 하여 그것을 동조요, 찬양이요, 고무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입니다.
세월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날 또 다시 이러한 똑같은 주장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실로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입니다.”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은 5·16 쿠테타 세력에게 1961년 10월31일, 31살의 나이에 처형됩니다. 범민련도 역시 범민련의 모든 활동과 주장은 모두 유죄로 판결났고, 이규재 의장님은 팔순을 내다보는 연로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3년 6월의 실형을 언도받았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아직도 이런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른 새벽에 집에 들이닥쳐서 어린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잡아가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21세기도 한 참 지난 2012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렇듯 빨간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간색으로 보이며, 파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파란색으로 보입니다. 현재 검찰을 비롯한 공안기관들이 여전히 이러한 퇴행적인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대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은 우리 민족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대를 역행시키는 검찰의 이러한 퇴행적 반공이데올로기, 냉전적 공안이데올로기에 의해 제기된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 일체를 저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3.
 
 
(1)
 
“주석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경청해보니 내용 하나 하나가 내 생각과 거의 동일합니다. 김 주석께서는 공개적으로 말씀이 계셨지만 40년 전에는 민족해방 투쟁으로, 그리고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애써 오신 충정이 넘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략) 주석께서는 광복 후 오늘날 까지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이 땅의 평화 정착을 애쓰신데 대해,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마지 않습니다.”
 
 

▴ 박철언 전 장관의 자서전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과 전두환 전 대통령 @ 민중의소리
 
이 내용은 1985년 9월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한 김일성 주석의 특사였던 허담 대남선전비서 일행을 경기도 기흥의 한화 별장에서 만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들에게 전달한 친서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5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장관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일제시대에는 민족해방 투쟁으로, 광복 후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평화정착에 애쓴 인물”로 고무찬양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말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2)
 
“대화하기 편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에 대해 또 제가 제의한 문제에 대해서 시원시원하게 터놓고 솔직하게 대화하는 스타일이었다. 되는 건 되고 문제가 있는 건 이런게 문제라며 조목조목 들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내게 한 약속을 거의 다 지켰다. 외부의 합리적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지난번 김대통령 방북 때 알려진 것처럼 수준 높은 유머를 구사하였다.”
 
 

▴ 지난 2002년 5월 방북한 박근혜 의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 민중의소리
 
위의 대화 내용은 2002년 5월, 박근혜 후보가 북경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보낸 전용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하여 김 위원장을 독대하고 방북 후 이례적으로 판문점을 통해 돌아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이야기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며, 합리적이고, 유머감각이 있는 지도자”라는 식으로 칭송하는 듯한 이 발언을 기자들 앞에서 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직접 썼다는 방북기를 통하여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과 주체사상탑 참관에 대해서 밝힌 바도 있습니다. 전용기를 타고 방북하여 만경대와 주체사상탑 등 주요 참관시설을 둘러보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와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박근혜 후보는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어떤 처벌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 이런 발언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했다면 지금 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3)
 
“내가 세계를 다니며 장군이란 장군은 다 만나봤어도 진짜 장군다운 장군은 김정일 장군이 처음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장군이라고 부르는 그 분에 대해 장군이라는 호칭 말고 어떻게 부르라는가?”
 
이 발언은 현대 故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정회장은 이 발언을 북이 아닌 남한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한 발언입니다. 공개된 발언 중에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최고 수준의 찬양, 고무일 것입니다. 이렇게 대놓고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도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앞에서는 이러한 헌법정신마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합니다. 검찰이 법 집행을 공명정대하게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지난 9월 21일,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고려대학교 로스쿨생들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치주의> 강연에서 유신헌법에 대해 “헌법의 이름으로 일당독재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평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깨어 있는 법률가, 저항하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악법도 법이니 준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외국은 악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는 “악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선진국이며 저항하는 깨어있는 국민이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위헌성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진보적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형사법 학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형사법학회도 2004년 국회에 국가보안법폐지 법률안이 상정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의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한 바 있을 정도로 그 문제점이 분명한 법입니다.
 
유엔 인권위에서도 수차례 폐지권고를 내렸던 국가보안법은 지난 해 5월 ‘프랭크 라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보고서를 통해 국가보안법 제7조가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최근 10월 25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회의장에서 열리고 총 67개국이 참여한 ‘한국에 대한 제2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RP) 심의’에서 또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결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 위헌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는 법률이며, 전 세계에서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법입니다.
 
독약은 독일뿐 약이 될 수 없듯이 악법은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헤치는 악이지 결코 법이 될 수 없습니다. ‘정의를 상실한 법은 흉기와도 같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5.
 
긴 눈으로 보면 인간의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 자유스러워지고, 고루 풍부해지고 더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또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 경제적 균부, 사회적 평등, 문화·사상적 자유 등이 더 올바르게 더 빨리 확대되게 하려면, 그 길이 역사의 옳은 길임을 알고 개인사나 민족사나 인류사 전체를 그 쪽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쌓여야 합니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님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계시는 노수희 부의장님, 범민련의 많은 활동가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노력과 헌신을 다하여 왔다고 자부합니다. 만약 그 것이 죄가 된다면 우리가 지은 유일한 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겨레의 통일을 이루어야 할 시대적 과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 전쟁과 대결, 불신과 반목, 국가보안법과 외국 군대의 불법적인 주둔과 살인과 폭력에 맞서서 싸울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루는 그날 까지 범민련의 싸움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6.
 
해방공간에서 남한단독선거와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적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1948년 4월19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전 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4.19~26)에 참석하고자 남측의 이승만세력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방북을 결행한 김구선생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고자 합니다.
 

▴ 왼쪽) 1948년 4월 19일 38선에 선 김구와 일행 김신, 선우진
▴ 오른쪽) 1948년 4월 22일 남북연석회의시 김구 선생과 김일성 주석 ⓒ통일부 제공
 
당시 미군정과 우익 청년·학생단체 및 기독교단체와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의 단체 등은 남쪽의 김구, 김규식 선생의 북행(北行)을 반대하며 강력히 저지했습니다. 역사적인 4월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 김규식 등 남쪽 대표 11명과 김일성, 김두봉 등 북쪽 대표 4명이 참가하여 열린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 이른바 ‘15인회의’(4.27~30)와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등의 이른바 ‘4김회담’을 통해 ‘외국군 철수, 남북한 총선거 실시와 정부수립, 남한단독선거 반대’ 등 중요한 정치적 합의들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결국 김구선생은 통일적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길에서 이를 반대하는 이승만세력과 미군정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습니다.(1949.6.26.)
 
만약 김구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검찰은 2012년 오늘, 노수희 부의장에게 그러했듯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행을 결행한 죄로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을 북쪽의 주요 정치지도자들과 만나 협의한 것은 회합·통신, 북쪽의 주장과 동일한 외국군 철수, 남한단독선거 반대 등을 주장하였다고 하여 찬양·고무·이적동조, ‘연석회의 격문’, ‘공동 성명서’ 등을 채택하고 발표한 것은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등으로 기소했을 것입니다. 지금 남산에는 김구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 이 법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김구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을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오늘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두서없는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신 재판장님과 방청객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민족자결 원칙을 경으로 하고 공명정대한 친미·친소 외교를 위로 하여 평화적 국제 협조 노선 위에서 문제의 해결을 구합니다.
우리는 혁명 시대로 돌아가서 집심감발(執心感發)하고 새 독립운동을 하려는 것입니다.
갈 길은 험산준령이나 영원한 진리의 위대한 힘이 따를 것이니 끝까지 이 길로 나갈 것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전진하며 정의에서 우러나오는 정당한 주장은 반드시 실현될 것을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