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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홍번 전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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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남측본부 작성일18-06-15 15:11 조회1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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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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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번 전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의장이자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께서 6월 13일(수) 오후 3시45분경 지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 향년 76세

故人은 1942년 6월 전북 정읍에서 출생하셨으며 1960년대 전남 장성군 동화면 남평리(18번지)에 정착, 전국기독교농민회 활동을 시작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과 조국통일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농민운동과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의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는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명예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빈소는 세종시 세종장례식장(세종시 연서면 함박로 300)이며, 발인은 6월 15일 오전 8시, 장지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입니다.

범민련 남측본부와 전국농민회총연맹은  6월 14일(목) 오후 7시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과 동지들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엄숙하게 진행하였으며 6월 15일(금) 오후 4시, 광주전남 지역 동지들과 광주 망월묘역에서 안장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홍번 의장님이시여! 통일조국에서 영명하소서!!

 


< 장례일정 >

□ 빈   소 : 세종장례식장(세종시 연서면 함박로 300)
□ 추도식 : 2018년 6월 14일(목) 저녁 7시
□ 발   인 : 2018년 6월 15일(금) 오전8시
□ 안장식 : 2018년 6월 15일(금) 오후 4시
□ 장   지 :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 유족

- 부인 : 노말순 여사
- 자녀 : 홍만희 홍대기 홍문희 홍경희 홍은기(2남 3녀)


< 故 홍번 의장 약력 >


- 1942년 6월 26일 전북 정읍(정주) 출생
- 1960년대 전남 장성군 동화면 남평리 18번지 정착
- 1980년대 전국기독교농민회 활동
- 1986년 전국기독교농민회 장성군농민회 회장
- 1987년 전국기독교농민회 전남농민회 부의장
- 1988년 전국기독교농민회 전남농민회 의장
- 1992년 - 93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3-4기)
- 1994년 - 95년 전국농민회총연맹 5기 부의장 및 조국통일위원장
- 1995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장성군농민회 창립
- 1996년 - 97년 광주전남민중연대 의장
-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7기 2차 부의장
- 2000년 - 2003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조국통일위원장
- 2005년 - 2009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광주전남연합 의장
- 2015년 - 2017년 자주시보 대표
- 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광주전남연합 명예의장
- 2018년 6월 13일 오후3시45분경 지병으로 별세(향년 76세)

 

 

<통일애국열사 홍번 의장의 삶과 죽음>

 

홍번의장은 1942년 6월26일 전북정읍의 중농집안에서 출생하셨습니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셨으며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석유를 쓰지 않는 종합형 농기계를 꿈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깊은 애정은 농사로 고생하는 농민들의 일손을 줄여보자는 생각으로부터 시작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69년 노말순여사와 결혼하고 동시에 장성군 동화면에 정착하면서 사과농사 등을 지으며 1983년경에 기독교농민회에 입문하여 조직적 농민운동의 꿈을 현실화 시키기 시작 했습니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면서 우직하게 한곳만을 바라보는 성격은 자신을 농민운동가로 단련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을 격으며 조직된 민중의 힘을 경험하고 뭉치는 것만이 진리라 생각하며 농사일을 보살피지 못할 정도로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오랜시간 장성군농민회를 준비하고 1986년 장성군 농민회 회장을 역임 수세싸움과 고추싸움등을 통해 전남지역 농민운동의 기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홍번 의장의 운동가로서의 가능성은 회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그의 특유의 어법과 친화적 행동들에서 더욱 빛났던 것입니다.

이는 전남 농민운동의 구심인 전농 광전연맹의장(92~93)을 역임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4~95년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겸 조국통일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아 활동하게 된 것은 투철하고 철저한 사업작풍이 검증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조국통일위원장의 수행은 그를 농업과 조국통일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간파하게 하고 농업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활동하게 합니다.

북에 비닐보내기, 비료보내기, 통일쌀 농사와 통일쌀 보내기, 전농대의원대회를 금강산에 유치하는 등 상상도 하기 어려운 사업들을 촘촘하고 꼼꼼하게 만들어내는 열정의 진두지휘 일꾼이었습니다.

1999년 다시 전농 7기 2차부의장을 맡으며 농민운동과 통일 운동의 맨 앞에서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농사일과 자식양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아쉬움을 애써 감추는 모습은 그가 시대와 함께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2000~2003년까지 다시 전농의 조국통일 위원장을 맡으며 농업과 통일의 다리를 확실하게 매듭지으며 이후 전농의 통일사업의 전범을 마련하여 농민통일운동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이후 2005년~2009년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남측본부 광전연합의장을 역임하며 그의 조직적 요구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범민족연합이 비합법으로 낙인찍힌 상태에서도 굴하지 않고 통일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못한 그는 그때부터 서서히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이후 2015~2017년 자주시보를 책임지기 전까지 젊은 시절 꿈꾸던 석유를 쓰지 않는 종합농기계의 설계도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을 보며 그의 꿈은 식을 줄 모르는 투쟁의 에너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주시보만 해도 탄압의 표적임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자주시보를 맡았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내었습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2년전 쯤으로 보입니다.

모든이들과 연락을 끊고 투병생활을 했다는 것은 자신으로 인해 동지들이 피곤해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8년 6월 13일 통일의 문턱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도숙 전 전농 의장 정리)​

 

 


< 추모시 >


통일농사꾼 홍번 동지를 떠나보내며

박종화(범민련 광주전남연합 부의장, 민족시인)

왔능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정감을 표현 하시던 그 목소리
들을 수가 없다 해도
이것은 아니란 말이시
다른 정책을 생각해 보란 말이시
기껏 날밤을 새우고 만들어 낸 사업의 방향을
한 마디로 틀어버리던 그 불콰한 기상
이젠 볼 수 없다 해도
밥 묵었능가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몇 장 건네주시던 그 손길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해도
이승을 떠나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당신의 통일농사에 대한 의지만은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아 타오르고 있습니다
늘 통일만을 생각하시던 당신의 삶은 결코 허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주전자 하나부터 모든 것을 통일과 관련되게 꾸미라 하시던
그 말씀 우리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안락도 쳐다보지 않고
한생을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앞날만을 사색하던 당신의 삶은
우리에게 자랑이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우리는 기쁨이었습니다
당신의 실천이 있어서 시련은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의 강철 같은 낙관이 있어서 분단조국도 살만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당신이 꿈꾸던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끝내는 하나 되고 말 조국의 미래도
희망의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못 다한 그대의 꿈 광주의 꿈 통일의 꿈
그 모든 꿈들 결코 버리지 말고 고이 바랑에 담아 가지고 가소서
통일농사꾼 홍번 동지
당신의 꿈 꼭 이루어지리니 우리와 늘 함께 하소서
잘 가시라
부디 잘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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