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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0] 범민련은 남북해외를 망라한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연합체 - (1) 범민련은 어떻게 결성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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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측본부 조회351회 작성일 21-08-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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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은 남북해외를 망라한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연합체입니다" 

(1) 범민련은 어떻게 결성되었나 


[연재] 범민련의 ‘노동자와 통일’ (10) 


범민련 남측본부(2021.8.1) 

 

연재 순서 


1. 범민련은 어떻게 결성되었나

2. 안녕하세요! 저는 불패의 이적단체 범민련에서 활동하는 000입니다.

3. 범민련의 활동 목표

4. 민족대단결과 범민족통일전선

5. 6.15공동위원회와 범민련의 관계

6. 반미자주로 운명을 개척하는 쌍두마차 – 노동자와 범민련 



외세에 의한 분단이 빚은 고통과 피해, 우리 민족 모두가 당사자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라진 지 어느덧 76년이 되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64%가 80대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미국과 반통일세력은 분단을 지렛대 삼아 중요한 정세의 고비마다 북풍과 총풍을 조작하여 민중들의 투쟁을 ‘이적행위’니 ‘체제전복’으로 몰아 야만적인 탄압을 휘둘러 왔습니다.


6.15공동선언이 세상에 나온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노조의 정당한 파업과 투쟁을 ‘체제불안’ ‘좌경용공’이니 하는 섬뜩한 말로 감시하고 탄압하는 일이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빨갱이’라는 말은 여전히 분단조국에 사는 사람에게는 가장 가혹한 형벌입니다.


평생가도 정신 못차리는 수구반민족세력들은 ‘5.18’을 광주사태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이북의 소행이라고 지껄여 댑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간첩사건’이 고문과 증거조작 등에 의한 것으로 속속 드러나 무죄로 입증되는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 곳이 바로 분단된 이남사회의 현실입니다.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이날 귀환한 비전향장기수가 복역한 기간은 총 2,045년이었고, 온갖 고문과 강제전향공작에 고통받은 투옥기간은 1인당 평균 32년 6개월이었습니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거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간 시간은 고작 오전 10시 5분부터 20분까지였으니 불과 15분도 안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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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9월 북측으로 귀환하는 비전향장기수 [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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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 14일, 8.15대회에서 북송 비전향장기수 환송대회가 열렸다. (2000.8.14 한양대)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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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민족대회 대표단과 귀환한 비전향장기수와 반가운 재회 (2003.8.16) [사진-범민련남측본부] 


2000년 9월 22∼27일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의 동포 고향방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국광복 이래 55년 동안 ‘한국적’이 아니라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묘도 가족상봉도 하지 못했던 재일동포들의 피맺힌 한이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총련 동포의 98%가 이남 출신이지만 고향방문을 하려면 총련을 탈퇴하거나 국적을 바꾸는 사상전향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분단의 비극이 마침내 6.15공동선언으로 한 순간에 허물어진 것입니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은 이산가족 문제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내정간섭, 핵전쟁위협, 방위비 분담금, 미국산 무기수입, 천문학적 군사비 지출, 세균전부대, 사드배치, 주한미군범죄, 미군 사격장, 환경오염, 군사주권, 국가보안법, 역사왜곡, 세계 유일분단국이라는 오명, 대중국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전략 편입 강요 등등,,, 수많은 분단적폐들이 민족의 공동번영과 이남사회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미 국무부 경제차관 크라크가 주한미대사관저에 와서 KT, SK통신사를 불러 놓고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겠습니까.(2019.11.6) 금강산 관광도 미국의 승인 없이는 할 수 없기에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된 데에는 근원적으로 미국의 책임이 막대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 가도 못하느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88년 3월 29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김중기 후보는 유세에서 공개서한을 통해 “88올림픽을 남북화합의 대제전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면서 ‘남북청년학생회담’ 개최를 제안합니다. 이를 계기로 88년 6월 10일 남북청년학생회담투쟁과 88올림픽 남북공동개최 투쟁에 불이 붙습니다.


88년 4월 16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국민대토론회’에서 ‘청년학생 조국통일투쟁선언문’이 발표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7개 사회단체는 ‘올림픽 공동개최 지지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어 4월 20일, 학생과 민주통일인사 등 약 3,000여 명은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범국민투쟁결의대회’를 개최하여 한반도 비핵지대화, 팀스피리트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 중지, 휴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남북한 단일팀 구성, 자유로운 통일논의 및 남북한 각계각층의 교류 등을 촉구했습니다.


같은 해 5월 15일, 명동성당 카톨릭 교육관 옥상에서 서울대생 조성만 열사가 ‘양심수석방’ ‘미국축출’ ‘공동올림픽 개최’ 등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여 고귀한 청춘을 민족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6월 9일에는 6.10 남북학생회담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약 3만여 명의 학생들이 서울로 집결했고, 6월 10일 연세대에서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개최했습니다. 이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 시각 북측 학생대표들은 판문점에 도착해 있었으나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끝내 남북학생 판문점회담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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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위해 결연한 의지로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는 김중기 학생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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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남북학생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향하려던 대학생 5천여 명이 홍제동 지하철역 앞 6차선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중 가스차 4대가 다가오자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경찰은 다연발 최루탄을 쏘아 해산시켰다. [사진-민청련동지회]


이어 7월 20일에는 범국민적 통일운동을 위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를 구성하였고, 이남의 각계인사 1,014명은 8월 1일 남북해외가 참가하는 민족올림픽을 제안하고 그 성과를 이어 본격적인 범민족대회를 추진하자는 취지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 취지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이남 민족민주운동단체 23개와 미국, 일본, 필리핀, 독일 등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를 성균관대에서 개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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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결성 발표 (1988.8.3)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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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을 위해 선발된 대표단 9명, 예비회담 의제 발표 (1989.2.15)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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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각계 인사들 [사진-범민련남측본부]


남과 북, 해외로 분산되었던 통일운동을 범민족적 운동으로


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은 결성대회에서 “범민족대회사업을 추진할 것을 결의”하고 나섰으나 미국과 노태우정권에 의해 저지당하고 간부들은 대거 체포 구속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3월 11일 범민족대회 유럽지역본부, 18일 북미주지역 추진본부, 30일 일본지역 추진본부가 연이어 결성되는 등 범민족대회를 성사하려는 해외동포들의 통일열기는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에 고무된 전민련은 90년 3월 2기 대의원대회에서 “8월 15일 범민족대회를 개최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7월 27일 평화군축을 위한 걷기대회, 8월 3일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족식, 13일 범민족대회 학술제, 14일 범민족대회 문화제, 15일 판문점에서의 범민족회의로 이어진 1차 범민족대회는 12개 지역, 66개 부문, 연인원 20여만명이 참가하여 통일을 향한 우리민족의 기상을 크게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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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3만의 통일의지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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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개막선포식. 연세대학교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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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개막선포식 이후 판문점으로 향하는 대표단. 연세대학교 [사진-범민련남측본부]


1차 범민족대회에서 미국과 노태우정권의 탄압으로 북, 해외동포와 판문점에서 상봉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대회 과정에서 확인된 통일의지를 발전시켜 남북해외를 망라하는 민족대단결의 구심이자 거족적 통일운동연합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건설을 결의하는 민족적 쾌거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에 따라 90년 11월 19∼20일 베를린에서 남북해외 실무협의를 거쳐 범민련을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마침  내 90년 12월에 해외본부, 91년 1월 23일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1월 25일 범민련 북측본부를 결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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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1월 20일, 남북해외는 독일 베를린에서 3자회담을 열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하였다. 남측에서는 조용술 목사, 이해학 목사, 황석영 작가, 조성우 대표가 참가했다.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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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실무회담 후, 기자들에게 범민련 기구를 설명하고 있는 고 곽동의 의장(왼쪽)과 임민식 현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 (1990.11.20. 베를린)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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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지역에서도 범민련 결성에 호응해 나섰다. 범민련 재일조선인본부 결성대회 (1990.12.3) [사진-범민련남측본부]


분단이후 최초로 결성된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범민련’


1990년 11월 20일 결성된 범민련은 남북해외 3자가 하나의 강령과 규약을 가지고 민족자주의 기본원칙 아래 전민족대단결과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목표로 활동하는 거족적인 통일운동연합체입니다.

이로써 남북해외가 각기 진행해 오던 통일운동이 조직적 연합운동으로 강화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범민련 운동은 매년 초 남북해외공동의장단 회의를 통해 한해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결정하고 이것을 실천해 나가는 3자연대운동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90년대 수많은 통일운동 단체의 결성과 대중사업의 신화들을 창조해냈던 범민족대회 소집운동은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을 위한 전민족적 투쟁의 꽃으로 되었습니다.

또한, 범민족대회 소집운동은 자주와 예속, 애국과 매국, 통일과 반통일을 가르는 첨예한 계선에서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의 투쟁의 용광로가 되었으며, 거대한 통일의 광장으로 아로새겨지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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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7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 남측본부는 서신과 팩스로 참가했다. (1999.3.28.~29 베이징) [사진-범민련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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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민련 남북해외본부 현황 [그래픽-범민련남측본부] 


* 이 글은 노동조합 조합원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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