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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오늘을 열고 내일을 바꾸는 역사 산책] 1946년의 교훈
  
 작성자 : 범민련남측본부
작성일 : 2014-11-14     조회 : 599  
 첨부파일 :  1946년의_교훈.hwp (36.0K) [16] DATE : 2014-11-14 13:53:32


1946년의 교훈



조선민족은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원하였고, 미군정과 친일파는 분단을 강행하였다①.


1946년은 분단과 전쟁을 막고 자주통일국가의 조속한 수립을 위한 전체 민족민주역량의 재편기라 할 수 있다

  

19451216일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미·소 외세의 각축과 미군사정부의 이남 점령 그리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조선민족 자체의 힘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실마리였다. 따라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내부의 단합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였다.

 

1차 미소공동위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46.3.20), 미국의 AP통신이 미군정이 이남에 단독정부수립을 착수하였다고한(4.6) 때를 맞춰 이승만은 정읍발언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을 기정사실화하였다.(46.6.3) 상황은 말할 수 없이 긴박하게 펼쳐졌다.

 

45115일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464월에 이르러 59만 명의 강력한 대중조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45128일에는 330만 회원의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이 결성되었으며, 46215일에는 이남에 민주주의민족전선이 결성되어 통일독립과 민주개혁을 위한 대중적 준비가 속속 정비되어 가고 있었다.

    

 

3()6()를 혁파하라!

 

당시 3당 합당을 둘러싼 진보적 정당의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크게 보면, 조선인민당(45.10.23 결성), 남조선신민당(46.2결성), 조선공산당이 있었다.

 

그러나 내부사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조선인민당은 여운형을 지지하는 31인파와 박헌영과의 합당을 찬성하는 리기석을 중심으로 한 48인파가 있었다. 남조선신민당은 백남운 위원장을 지지하는 간부파와 조선공산당과의 합당을 지지하는 반()간부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박헌영의 재건파와 강진, 이영 등이 주축이 된 대회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46113일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조선공산당의 3당이 합당을 선언하고 남조선노동당을 창당하게 되자 이에 반발한 인민당의 48인파 신민당 간부파 조공의 대회파가 규합하여 4611월에 사회노동당을 결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친일파 청산문제와 토지개혁문제에 대한 이견까지 가세해 있었다.

 

박헌영은 미군정이 지지하던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한 여운형을 친미부르조아지라고 적대시하였고, 여운형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을 편협하고 패권적으로 대했던 박헌영을 경계하면서 갈등의 골은 좁혀들 기미가 없었다. 박헌영의 편협함은 설득과 공통성에 기초한 합의보다는 세력을 앞세워 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해 나가는데서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사회노동당의 여운형은 남조선노동당과의 합당 논의를 재차 제의하지만 수포로 끝나고, 결국 사회노동당은 47227일 해체되고, 또 다시 여운형은 524일 근로인민당을 창당하지만 719일 여운형이 암살당함으로써 더 이상의 합당 논의는 종결되고 만다.

    

 

몇 가지 교훈을 되돌아본다.

 

첫째, 46년 당시에 대중적 진보정당이 필요했던 이유는 자주통일과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전 민족적 총의를 모아 일제잔재의 완전한 청산과 외국군 철군, 노동과 토지문제 해결, 생존권 보장 등의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합된 정치활동의 주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문제는 68년이 지난 지금의 정세와도 한 치 다름이 없는 요구이다.

 

463당의 진보대통합의 좌절에서 볼 수 있는것은 패권과 분열세력에게는 자멸, 공멸이 있을 뿐이라는 준엄한 교훈이다.

 

일례로, 3당 합당에 반대한, 엄밀히 말하면 박헌영의 편협한 단결노선에 반발했던 세력들이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하게 되는데 이는 분열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당 상층부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기층 대중운동의 분열을 불러 오고 이는 미군정과 친일세력의 분열공작과 탄압에 무방비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운동이 사분오열되면 결국 그 탄압은 정당의 핵심부로 돌아 올 수밖에 없게 된다. 의견의 차이가 조직의 분열로, 대중운동의 분열로 확대심화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둘째, 3당 합당을 추진하는 과정에 박헌영은 홍명희와 근로인민당을 우익적 반동으로 규정하고, 김구와 김규식을 매국적 반동분자로 규정하면서 3당 합당의 협력자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민족주의자와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을 민족통일전선에서 배제함으로써 진보정당 통합의 대중적 신뢰와 동력을 스스로 위축시켰음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이들을 지지하던 수많은 대중들을 통일전선운동으로 단결시켜내지 못하는 좌경적 오류를 저질렀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관계에서 단결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단결의 문제에서는 입장과 방법의 상이함이 존재할 수 있으며 공통성을 살리면서 단결의 정도를 끊임없이 높여 나가는 과정을 취하게 된다. 때문에 단결문제에서는 공통의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결의 정도가 미약한 데 통일성의 수준을 높이는데 치중하면 단결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내적 통일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통 큰 단결의 문제를 서로 혼동하면 박헌영의 좌경적 방법처럼 패권과 주도권으로 문제를 대하게 된다. 박헌영의 모험주의적이고 조급한 투쟁이 대중운동의 크나큰 손실을 가져 온 것은 패권주의에 기초한 성과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결과적으로 당면한 대의와 공동의 목표를 결코 실현할 수도 없고 끝내는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에 되돌이킬 수 없는 난관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셋째, 60만여 조합원과 함께 여러 형태의 대중투쟁을 이끌던 전평이 와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지 미군정의 탄압이나 어용단체인 대한노총의 분열공작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평이 미군정에 철저하고도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협력과 투쟁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음에 대해서는 대략 공통적인 지적이다. 당시 건국노선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미군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결국 초기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은 대중투쟁의 무장해제와 탄압을 자초하였다.

 

또한 조공의 박헌영이 참여하고 있었던 경성콤그룹은 전평을 조공의 외곽조직으로 치부하였고, 전평 집행부를 조공 재건파의 파견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스스로를 전국적 수준의 노동운동을 대표하기 어려운 약점을 노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평 집행부는 조공의 방침을 전달받아 수행하는 수동적 기구로 될 수 밖에 없었다. 일례 로 박헌영에 반발했던 장안파 이영을 박멸하자고 전평이 긴급 동의로 결정함으로써 전평이 조공의 특정한 입장을 대변하고 조공내부의 분파성이 전평으로 여과없이 전이되면서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넷째, 자주와 해방을 목표로 하는 역사적인 운동에서 단결은 처음이자 끝이다. 

해방 후 미국의 전략은 조선분할지배와 사회주의저지를 위한 대소봉쇄, 미국의 패권확대를 위한 동북아 진출 거점구축, 한미일 삼각동맹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당시 사회변혁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던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나라와 민족이 주권이 없으면 상갓집 개보다 못한 비참한 신세가 된다는 교훈을 40여 년 동안 온갖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겪어 왔던 선각자들이었다.

 

나라의 자주통일과 민주개혁보다 더 큰 대의가 있을 수 없으나 당시의 운동은 기득권과 주도권 경쟁, 분파와 분열이라는 편향과 오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역사는 증언한다. “단결을 중시하는 자 흥할 것이요, 단결을 해치는 자 망할 것이다.”

 

다섯째, 정권문제는 몇 가지 필수불가결한 측면을 반드시 해결하여야 한다.

46년 당시, 통일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대략 4가지의 과제가 해결되었어야 한다. 대중적으로 당이 건재하여야 하며, 합법적 활동 영역이 확장되어야 하며, 대중운동이 통일적으로 전개될 수 있어야 하며, 광범한 중간세력과의 연대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4가지 과제의 해결은 노동계급역량과 민주역량, 애국역량의 굳건한 단합과 실천력에 의해 담보되어 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를 여는 창문이다.

이남지역의 3당 합당의 결과는 간판만 바꿔 단 정도였다고 대부분의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 힘은 미약하였고 대중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았으며, 여전히 분열되어 있었으며, 미군정과 친일파들을 상대로 투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반적으로 큰 덩어리의 단결을 이루는 문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작은 한 덩어리를 계속 굴려 큰 덩어리를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여러 개의 덩어리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합치는 방법이다. 후자의 방법은 정당사회단체의 연대연합을 통한 방법이다.

 

분단 70년 통일염원 70년의 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삐라와 총탄이 하늘을 가르고 미국의 핵전쟁 기도와 민족영구분열정책이 극도에 달해 있는 팽팽한 긴장의 격동 속에서 68년 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민족의 진로독자들께서 는 과연 우리사회의 진보정당과 전선문제에 대한 어떤 지혜와 방법을 갖고 있을까.

 

64년 전, 분단되면 전쟁난다고 했던 것이 단순한 우려가 아닌 끔찍한 현실로 나타났던 것처럼 오늘의 상황 또한 그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전쟁의 그림자속에서 6.1510.4는 질식하고 있다. 단결을 바라는 대중의 엄중한 요구를 온 몸으로 실천하며, 그 누가 주저한다 해도 <단결!!!>을 내세우며 대중을 믿고 2015년을 전환의 해 승리의 해로 만들어 나가자.

 

배우고 익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운 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46년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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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7년 7월 3일, 조선신문기자회의 여론조사를 보면, 인민공화국 국호지지 70%, 인민위원회의 정권형태 지지 71%. 무상몰수 무상분배방식의 토지개혁지지 68%의 결과를 보이는데, 당시의 민심이 철저한 자주적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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