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김상찬

193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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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1년 부산시 사상면 감전리에서 소작농이었던 부친 김태선 모친 최음전의 넷째 아들로 출생.

1943년 사상초등학교 졸업.

1944년 진학을 위해 일본 키타큐슈[北九州]로 가다.  

 탄광에서 학대받는 조선인의 모습을 목격하고 일본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르다.

1945년 귀국

1946년 동아중학교에 진학하여, 학병 출신의 교사에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배우다.

      남로당 산하 청년운동단체 민주청년동맹(민청)에서 활동.

1948년 동아중학 3년 시절 단독정부 반대투쟁에 참여. 교사들의 도움으로 도피 생활.

1954년 부산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산수 이종률 선생을 만나다.

      생활고와 학업의 무기력함을 탄식하며 자퇴할 작정으로 돌멩이로 총장실 타격을 

      계획하던 중 이종률 선생의 가르침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재탄생하다. 

      이종률 선생의 지도하에 하상연, 이영석, 배다지, 조현종 제씨와 함께 천하정에서 

      새로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하다.

      민족문화협회 활동

1958년 국제신보 조사부에서 국제 정세 해설 전문 기자로 명성을 떨치다.

1960년 4·19를 맞이하여.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조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초대 간사장 역임.

1961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 민족일보 기자로 활동.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다시 수배자가 되어,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되어 7년 언도를 받고  4년의 옥고를 치름.

1970년대 어구·어망 제작으로 생활

1986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참여하여 공동의장 역임

1987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지도위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공동의장 역임

1992년 민주주의민족통일부산연합(부산연합) 공동의장 역임

1993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장 역임

1993년 제4차 범민족대회 남측 추진본부 집행위원 역임

1999년 민족자주평화통일회의(민자통) 부산본부 상임의장 겸 중앙 공동의장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지도위원

2000년 산수 이종률선생기념사업회 이사

2001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부산본부 공동대표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 명예회장 겸 부산지부 고문

2006년 평화와 자주를 지향하는 민족군대의 염원을 담아, 평화재향군인회 창립에 

       주동적으로 참여하여 공동대표와 부산지역본부 대표

2008년 2월 7일 향년 만 77세를 일기로, 꿈에도 그리던 조국통일과 민족혁명을 맞이하지 

       못하고 식도와 위장의 병으로 영면하시다.


[ 활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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