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주명순

1923-1998

본문

[ 약력 ]

1923년 12월 26일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아버님 주창호님과 어머님 김귀순님 사이에서 3남매중 막내로 출생

1931년~1935년 함경북도 회령군 벽성면 소재 벽성초등학교 4년 졸업

1935년~1937년 회령 유선탄광, 아오지 회암탄광에서 뚝탄분쇄공으로 노동에 종사

1937년~1941년 당시 여성 노동자로서 유일하게 일본어를 말할 수 있어 관리 직원으로 발탁, 회암탄광 등에서 전화교환수로 일함

1941년~1945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전시동원체제를 반대하시며 중국(만주)의 길림성 풍만, 흑룡강성, 하얼삔 등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시다 함경북도 아오지로 이주.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에 가입활동, 조국건설 20개 강령 등 해설원으로 활약

1946년~1950년 세계통신사 기자로 활동하시며 민족자주와 민중해방을 위해 활동

1951년~1958년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하아 구속, 1심에서 10년,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선고받음

1958년~1961년 최백근(사회당 조직위원회 조직부장) 선생과 함께 민족민주운동에 헌신

1965년~1975년 경성의전 출신으로 서울, 원산, 평양, 춘천 등에서 내과의사로 개업하던 중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10년 옥고를 치루고 나온 평생 동지였던 고 박남업 선생과 결혼

1975년~1979년 이른바 ‘오작교’ 사건으로 부군과 함께 구속.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각각 5년과 3년 6개월 선고

1980년~1990년 민족민주운동과 양심수 석방을 위한 활동

1989년 10월 22일 평생 동지이자 부군이신 고 박남업님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심

1990년~1995년 범민련에 가입, 범민련남측본부 중앙위원으로 활동

1995년 11월 29일 김영삼정권의 범민련 대탄압으로 신창균 고문, 강희남 의장 등 29명과 함께 구속, 재판중 병보석으로 출소하여 입원치료받음,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 선고

1996년 3월 25일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으로 선출

1998년 6월 13일 오전 8시 30분 간암으로 진단받고 퇴원하셨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끝내 꿈에도 그리던 통일조국을 보지 못한 채  운명. 김포 공원묘지에 안장               

[ 생애활동 ]

1923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한 선생은 해방 이전까지 회령 유성탄광, 아오지 유암탄광 등지에서 뚝탄분쇄노동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조국강령 20개 해설원으로 활동하였고, 세계통신사 기자로 근무하여 조국통일운동에 전념하다 구속되어 3년 6개월의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출소 이후 최백근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오작교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두 번째 옥고를 치렀다. 

계속하여 범민련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평생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세 번째 구속을 당한 후 ’98년 간암으로 진단받고 병세가 악화되어 6월 13일 오전 8시30분, 끝내 운명하였다. 

슬하에 외동따님 박윤경님과 사위 신원호님, 손주 신형수, 신재웅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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