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박동환

192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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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29년 9월 4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동운리 동산촌에서 출생

1930년 1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감

         일본 동경 향도구 고등소학교(현 초등학교)을 졸업한 후 일본국민총동원령에 의한 비행기 운반차 제조 공장에서 1년 동안 소년노동자 생활을 겪었다.

1945년 12월 귀국 후 담양 잠시 동산촌에 머물다.

1946년 6월 종연방직회사(현 전남방직) 입사

1957년 평북출신 동료 노동자 김명숙씨와 결혼. 고인의 부인은 지난 1984년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1961년 4.19 투쟁에서 전남방직 노동자 3000여명을 이끌고 전남대, 조선대학생들과 연대 투쟁을 주도했다. 이후 전남방직 노조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이끌다가 5.16군사쿠데타 이후 해직에 이어 검거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방직기계 특허 연구, 여관운영, 동서증권 근무,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97년 1995년 일본 동경에서 범민련 박용 사무총장을 만났다는 이유로 안기부 광주지부에 체포돼 국가보안법상 잠입 ․ 탈출죄로 7년 구형에 3년 징역, 집행유예 4년으로 4개월 옥고 치르고 석방됐다. 당시 고인은 형언할 수 없는 구타와 물고문 등의 고초를 겪었다.

2015년 민족자주평화통일 광주전남회의 의장

이후 (사)사월혁명회 회원,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광주전남 고문, 6.15공동위원회 광주본부 고문 등을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다.

2019년 4월 2일 별세(향년 9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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