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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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일지 ]

1월 13일 강희남, 이천재, 김영옥, 김영제, 주명순, 홍세표, 곽병준, 이종린, 박석률 선생 기소 

1월 15일 전창일 부의장, 김병권 중앙위원 간첩죄로 기소

1월 19일 「범민련 재미본부」,「범민련 남측본부」 탄압 규탄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2월 10일 ‘통일인사 석방과 범민련 사수를 위한 하루 주점’ 개최(동국대 학생 식당) 

2월 15일 ‘범민련 사수와 통일애국인사 석방을 위한 해외 비상대책위원회’결성 

2월 23일 건국대 사회과학관 대형 강의실에서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1주년 기념대회’ 개최, 200여 명 참가 

연세대에서 중앙상임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던 4기「한총련」정명기 임시의장 등 중앙상임위원이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참가, 「범민련」 사수 결의를 밝힘.

이창복 「전국연합」 의장 축사, 비전향장기수 임방규 선생 축사 등 

2월 28일 ‘범민련 북측본부, 해외본부 의장단 비상회의’ 개최 


3월 1일 ‘3.1민족자주정신 계승 및 일본 군국주의 부활 반대 결의대회’참가 

3월 9일 농성 100일에 즈음하는 한겨레신문 광고 게재 

3월 26일 ‘남조선의 통일애국인사 석방 대책 북측위원회’ 2차 회의 진행 


4월 15일 「범민련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결성 1주년 기념행사 

4월 24~25일 ‘범민련 4차 공동의장단 회의’가 중국 심양에서 열림. 성동구치소에 수감중이던 강희남 의장의 친필 위임장을 팩스로 전송하여 북, 해외측에 위임 

4월 30일 일본에서 진행한 「범민련 남측본부」 구속자 석방 탄원 서명(단체: 491개, 개인 184명)부를 정부 합동 종합민원실에 접수 


5월 8일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간담회 진행 

5월 17일 <4차 범민련 공동의장단 회의 해설서>1만부 제작, 배포 


6월 5일 강순정 서울시연합 부의장 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안기부에 연행, 같은 날 최진수 사무처 간사 연행 

6월 7일 <반미․반김영삼 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남측 통일운동진영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는 제하의 정책문건 제출 

6월 14일 위문서의 부속 문서 제출 

6월 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한시해(「범민련 북측본부」)와 문정현(「민족회의」)간에 (가)합의가 이루어짐. 정치적 기조, 대회추진 방식 등에는 합의했으나 명칭에 있어 이견이 발생, 「민족회의」 측에서 남측에 돌아가 「범민련 남측본부」와 명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완성된 합의로 하기로 함.

 

7월 24일 「범민련 남측본부」와 「전국연합」간의 실무협의, 명칭을 ‘평화통일전민족대회’로 하여 6.20합의를 수용하기로 함. 이 협의 안은 민족회의 운영위가 안건상정하지 못함으로써 범민련 남측본부 중집에서 부결 함. 

7월 30일 한양대 사범대 강의실에서 ‘7차 범민족대회 남측 추진본부’ 결성


8월 8일 범민족대회와 관련한 실무 회담, 서울. 평양, 심양에서 분산개최하기로 결정 

8월 12일 김영삼 정부, ‘7차 범민족대회’ 불허 입장을 고수하며 2만여 명의 경찰을 동원, 연세대를 에워싸고 봉쇄함. 

경찰의 봉쇄를 뚫고 연세대로 들어온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7차 범민족대회’ 개막식 개최 

8월 13일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개최 

8월 14일 범민족회의 개최 

7차 범민족대회 전야제 진행 

8월 15일 8.15 기념식 및 범민족회의 보고대회 진행(오전 7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학내진입을 시도하고 폭력 진압이 계속되자, 범추본, 행사 일정을 조기에 종료하고 귀가 보장을 요구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함. 

이후 8월 19일까지 김영삼 정부는 전경 84개 중대와 1만여 명의 경찰 특공대를 동원하여 ‘독수리 작전’으로 명명한 봉쇄, 진압작전을 펼쳤고, 연세대에 남아 있던 6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연세대 이과대, 공대, 자연대 등의 건물에 갇혀 있었음. 

총 5,849명 연행, 462명 구속, 3,341명 불구속 입건, 373명이 즉심에 넘겨지는 문민독재의 대탄압이 펼쳐짐.

8월 16일 「범민련 대전충남연합」, 대전충남연합 사무실 전화 도청 및 이전오 사무국장 집에 대한 기무사 사찰의혹에 대해 기무사 고발  


10월 1일 진관 스님 연행, 구속 


12월 30일 송년행사 및 출소자 환영대회 개최(한양대학교)

[ 공동의장단 회의 ]

4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1996년 4월 25일, 중국 심양)


- 조국강토에서 전쟁 위험을 가시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벌여 나갈 것

- 민족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

- 연방제 방식에 의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에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열어 놓을 것

- 범민련 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 할 것

- 7차 범민족대회를 공동으로 성대히 개최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



[ 범민족대회 ]

1996년 7차 범민족대회 


7차 범민족대회는 96년 민족 앞에 제기되는 조국통일 투쟁의 과제를 실천하고 민족의 반역자 김영삼 정권의 실체를 낱낱이 밝힌 애국적 통일항전이다. 

미국과 김영삼 정권의 군사긴장, 대결책동에 맞서 민족의 대단결된 힘으로 투쟁하고자 북미평화협정체결, 연방제 확산 실천, 국가보안법 철폐, 콘크리트 장벽 철거 등을 투쟁내용으로 한 7차 대회는 통일의 성지 연세대에서 개최되었다. 


대회의 원천봉쇄 입장을 밝힌 김영삼 정권은 이미 8월 초순부터 대회장을 막아 나섰다. 

이에 맞서 한총련 통일전사들은 대회장 사수를 즉각 결의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통일의 불  바람을 일으키던 통일선봉대를 중심으로 속속 연세대로 모여들었다. 대회까지 수십 차례의 침탈과 계속된 연행으로 한총련은 건설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으며, 김영삼 정권은 한총련과 범민련 와해를 선언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함으로써 정권과의 일대격돌에 들어가게 된다. 

대회는 한총련을 비롯한 애국통일세력의 항거로 성사되었으며 대회성사 이후 안전적 귀가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다시 막아 나섬으로 해서 한총련은 농성에 들어가게 되었고 10여 일 간의 항쟁으로 단일사건으로는 최대의 구속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총련의 애국적 항거로 김영삼 정권은 통일애국세력들과 전체 민중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이듬해 전국을 휩쓸었던 김영삼 정권 타도투쟁의 거세찬 불길을 지피게 되었다. 

수많은 구속자와 조직 파괴책동으로 한총련을 와해시키고자 하는 김영삼 정권의 의도를 분쇄하고, 내부의 개량적 흐름을 청산함으로써 더욱더 굳건한 조직으로 우뚝선 자랑한 모습은 한총련은 불패이며 그 누구도 애국적 흐름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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