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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30주년 기념 인터뷰] “범민련의 깃발은 더욱 세차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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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측본부 조회575회 작성일 20-11-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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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의 깃발은 더욱 세차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범민련 30주년 기념 인터뷰]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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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낙기 대표와 인터뷰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근처 중식당에서 진행됐다. 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전인미답의 혈로를 걸어온 범민련”


분단 이후 최초로 결성된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결성 30돌을 맞이하였다. 범민련은 남북해외 동포들의 단일한 민족대단결 조직이며 하나의 강령과 규약을 가지고 활동하는 유일한 거족적인 통일운동 연합체다. 지난 30년간 범민련이 걸어온 노정은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존엄을 지키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참다운 애국애족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누구나 쉽게 결심하고 걸을 수 있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통일애국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감히 선택할 수도 선뜻 내디딜 수도 없는 전인미답의 혈로였다. 그동안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온갖 고초와 정치적 박해를 당하면서도 변함없이 애국애족의 한 길을 걸어왔으며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대단합,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지난 30여년간 엄혹한 공안탄압의 정세 속에서도 언제나 범민련을 지키고 범민련과 함께 투쟁해온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일광장은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모임이다.


“범민련 운동은 정당하다”


권낙기 대표는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온갖 정치적 박해와 가혹한 탄압이 뒤따르고 가슴 아픈 희생도 각오해야 하는 간고하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면서 “범민련 선배들은 이 길에서 조금도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자주와 민주의 제단에 한 몸을 바쳐왔다”고 범민련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권 대표는 “최근 십수년간 통일운동 과정에서 투옥된 사람이 범민련 간부들 말고 누가 더 있냐”면서 “범민련 운동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권 대표는 지금까지도 일부 통일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범민련에 대해 ‘원칙이 밥먹여주냐’, ‘합법적으로 통일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범민련 활동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범민련도 이제 감옥안가고 운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범민련이 통일운동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다’, ‘6.15공동위가 있는데 범민련이 왜 있어야 돼냐’, ‘범민련이 통일운동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등등의 온갖 비난과 문제제기에 일침을 가하면서도 그럴수록 더욱 더 범민련이 분발하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권 대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의 혁명의 신심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다”면서 어린 시절 불행한 일을 겪으면서 “이건 반드시 해결하고 말겠다는, 바꾸고야 말겠다는 ‘한’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느 시대를 어떻게 살아왔는가’라고 하는 점에서 ‘시대적 소명’, ‘소명의식’은 대단히 중요하고 이것은 어느 개인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범민련 30주년의 의미는 단지 3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민련의 결성은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결성을 절실히 요구하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를 만드는 인간의 반영이라는 점을 우리가 깊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범민련 결성 30주년’을 맞아 이뤄졌다. 권낙기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근처 중식당에서 진행됐다. 권 대표는 지팡이를 짚는 불편한 몸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 어디든지 한걸음에 달려가서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중 범민련 30주년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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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낙기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권 대표는 운동진영 안에서도 가장 발이 넓고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혁명적 낙관성”


□ 통일뉴스 통신원 : 먼저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권낙기 대표 : 내 소개랄 것은 특별한 건 없지만 조금 이야기하면, 나는 1946년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된 그 이듬해였다. 부득이하게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출신성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좀 독특하다 보니까. 누가 운동을 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 중에서도 집안환경을 제일 먼저 꼽는다.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감옥 가시는 걸 보고, 백부님이 사형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구타하고 끌고 가는 모습을 직접 봤다. 그때는 내용도 알 겨를이 없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내가 성장하면서 지금의 권낙기가 되는데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집안 사정이라든지 원래 내 기질도 있고, 특수성, 성격 등등 대신 좀 학벌은 없다. (웃음) 


다른 친구들 가방 메고 학교 다닐 때 난 중학교 2학년때 가정형편 때문에 중퇴를 했다. 신문팔이 구두닦이부터 시작해서 인쇄공장, 국수공장 그리고 4부두, 3부두, 2부두 막노동까지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그때 일이 다른 한편으로는 먼 훗날 사고의 지평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감옥에서 출소하신 숙부님 밑에서 첫 심부름을 하면서 요즘 말로 하면 ‘비합법활동’,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숙부님이 1966년도에 평양을 다녀오시고, 그리고 관련된 일이 통혁당이었다. 

나는 72년도 통혁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감옥살이를 했다. 1심에서 검사 구형 15년을 받았는데 재판과정에서 난리 치고 하니까 무기를 선고받았다. 고법에서 10년으로 감형되고,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사형에서 무기, 어머니는 5년에서 3년 6월, 동생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가 없는 건 당시 비록 전셋집이었지만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나이 어린 두 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참담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놈들의 만행을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평생 한으로 남아있다.


이론 습득 과정을 통해서 갖게 되는 결의도 중요하지만 어떤 생활과 경험 속에서 얻게 되는 어금니 꽉 깨물 수밖에 없는 그런 ‘한’이라고 할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한’, 이건 반드시 해결하고 말겠다는 그런 결심이나 각오 같은 것이 이 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출소해 나와서 민가협 장기수가족협의회 회장, 그리고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나오고 통일광장을 만들었다. 통일광장 만들었을 때 내가 ‘비합에서 합법으로 나오는데 무려 35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겸 우리 역사의 속도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그만큼 우리 운동이 쉽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 덧붙이면 조국통일과 혁명을 말하고 실천하는 우리 범민련 일꾼들은 반드시 머릿속에 기억해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혁명적 낙관성’이다. 혁명적 낙관성이란 혁명의 속도도 때로는 늦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지 그저 입버릇처럼 하는 ‘낙천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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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8월 14일, 1차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권낙기 대표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역사의 필연으로 탄생한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범민련”


□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3자연대 조직 범민련 결성의 의미는? 


■ 사실 오늘 인터뷰가 범민련 30돌을 축하하고 인사하는 자린데, 지금까지 내 이야기만 했다. (웃음) 개인적으로 칭찬과 배려에 인색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개인한테는 칭찬이 인색할지 모르지만 조직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싶지 않다.


3자연대 조직 범민련 결성 30돌을 맞이해서 우리가 ‘축하한다’ 내지는 ‘지지찬성한다’ ‘지원한다’라고 하는 개인의 각오를 말하기 앞서, 먼저 30돌 이전부터 범민련의 역사를 역사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먼저 알아야 되고, 범민련 30돌을 30년이라는 햇수에 현혹되지 말고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3자연대 조직이 만들어졌는지 각자 깊이있게 생각해보면 범민련 조직에 대한 뜻이 더 깊어지리라고 본다.

 

다 알다시피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 불행의 시대 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우린 확인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 또는 무장투쟁, 이러저러한 개인과 집단, 모든 걸 헌신 희생 탈탈 털어가면서도 조국과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를 내던졌던 우리 역사가 있다.

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도 바로 탈만 바꿨지 미제국주의라는 새로운 굴레를 덮어쓰고 지금 70년 가까이를 살아오고 있고, 싸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단체들이 양심을 갖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960년대 통혁당도 비합법 조직이지만 만들어졌고, 인혁당 그리고 남민전 전략당 등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다. 우리 민중들은 기쁨도 가졌고 또 때로는 탄압에 무릎을 굽혔고 굽혔던 무릎을 다시 펴고 흩어졌던 사람들을 모으고 다시 구두끈을 매면서 그렇게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군사독재 시절,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으로 세상을 옥죄어 오던 그 때 통일은 말도 못꺼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하로 비합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그 때, 30년 전에 범민련이라는 3자연대 조직이 탄생했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시대를 만드는 인간의 반영이다.

왜 3자연대 조직을 만들었을까? 남쪽에 허다한 통일운동 단체들이 있었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바로 멀리 앞을 내다보면서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나오기 10년 전에 준비되고 결성되면서 범민련이 만들어졌다. 일대 사변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우리 민족의 우리 역사의 서광이라 할 수 있는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나는 30년 범민련 역사 속에서 또 하나 시대의 역할과 역사의 반영으로 만들어졌던 범민련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갖고 확인을 받을 수 있고 승리를 예감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범민련은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아왔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온갖 단체, 온갖 활동가, 온갖 양심을 갖고 참된 삶을 살겠다고 나선 청년학생,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범민련을 지켜왔고 키워왔다. 오히려 탄압이 범민련을 키워온 측면도 있다. 범민련은 강인한 의지로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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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1월,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29돌 기념대회에서 권낙기 대표는 대회 초청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왼쪽부터 권오헌 명예회장,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의 깃발은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더욱 세차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 범민련 30년을 돌아보면?


■ 범민련은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 30년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으면서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범민련을 지켜왔다. 그런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 그 결의가 바로 역사에 대한 희망이라고 나는 본다. 


그동안 철창 속에서 어금니를 깨물고 결의를 다졌던 우리 선배들, 선열들, 열사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범민련 활동가 중에 감옥에서 투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 되나? 이것이 바로 범민련이다. 불굴의 신념과 통일애국의 의지로 범민련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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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월 2일,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故 박정숙 선생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권낙기 대표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 30돌을 맞이해서 꼭 인사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에 내가 어디에 있는가 범민련 조직에 있다. 범민련 조직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왔고, 어떤 역사를 만들어 왔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범민련 성원들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웃음이 되고, 오늘의 고통을, 슬픔을, 비참함을 화를 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범민련이 갖고 있는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범민련 동지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지지와 성원, 경의를 표한다.


30년 범민련 역사에서 거의 한 10년은 깃대를 꽂는데 다 바쳤다. 내외적으로 법적으로 심지어 같이했던 사람들 한테서도 눈흘김, 비아냥거림, 무시를 당하면서도 범민련 깃발을 지켰다.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그 좋은 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깃발을 만들었다. 이제 4.27 공동선언이 나왔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겠지만 이제부터는 선배들이 꽂아 놓은 깃발과 또 민중들이 만들어 놓았던 깃발은 이제 우리들이 펄럭이게 하자. 우리 모두가 범민련 구성원이다. 범민련이 이제 산들바람이 되고 더 나아가서 광풍이 불어오는 통일의 큰 바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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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회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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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임방규 통일광장 전 대표,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 사랑합니다”


□ 범민련 성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 여러분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사탕발림 소리, 겉치레 인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다.


다만 솔직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칭찬하는 것보다 범민련 성원들 스스로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범민련 활동이 1년이 되든 10년이 되든 30년이 되든 관계없이 범민련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30년, 긴 세월이었다. 역사는 점 점으로 이어지고 선이 되듯이 30년 동안 우리 선배 열사들이 얼마만큼 탄압과 고통, 헌신과 희생 속에서 우리들 곁을 떠났나? 또 우리 선배들은 그 사랑하는 후배들이 감옥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 30년이 아니라 300년까지도 만들어내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주체로서 우리 한번 힘껏 단결해서 나아가보자. 


본래 사람이 둘이 있으면 그림자도 둘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업으면 그림자는 하나다. 우리 조국 땅도 하나고 우리 민족도 하나인데도 지금 우린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하나로 만들자. 


다시한번 여러분의 투쟁에 동지애에 조직애에 모든 사랑에 성원을 보내고 싶다.


“범민련 사랑합니다!”



(기사출처 - 통일뉴스)